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리 Dec 14. 2023

01_그동안 뭘 했니?

 살아내었다는 것

“그동안 너는 뭐 했니?”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3년 정도가 지난 것 같다. 

계절이 몇 번인가 바뀐 것 같았고 코로나 시기도 있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그저 ‘안’에 머물러 있었기에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한들 무엇이 달라졌을까...     

빼꼼히 내 몸의 일부만 먼저 소심히 내밀어 본다. 햇살이 제법 따뜻한 느낌이다.


그동안 세상도 변한 듯 조금은 낯설다. 

너도 나도 인스타. 너도 나도 유튭. 공중파가 아닌 넥플릭스. 미래의 일 같았던 인공지능, 챗GPT...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 벌기? 경제적 자유? 하루 4시간만 일하고도 통장에 돈이 쌓인다는 젊은이들. 직장으로 출근하지 않고도 그들을 위해 일해주는 파이프라인이 있단다.


“남편보다 많이 벌어요“ 아이 셋에 살림하면서 인스타로, 온라인으로 남편보다 많은 수익을 낸다는 젊은 엄마들. 광고일까 진실일까 감히 의심도 해 본다.

넘쳐나는 자기계발서들... 넘쳐나는 작가들...

평범해 보이는 그들이 겪은 일상, 경험, 기술, 생각, 아이디어 자체가 사업이 되는 세상.     


“그동안 너는 뭐 했니?”     

누군가가 묻는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세상 바뀌는 분위기는커녕 계절이 바뀌는 것도 모르고 지내긴 했지.

이렇게 변한 세상의 트렌드 가운데 내 몸 일부 조금만 내밀어 보았을 뿐인데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다시 ‘안’으로 움츠러 들던 순간, 나는 갑자기 대답이 생각났다.   

  

그동안 뭐 헀나구?     

“나는 죽지 않았어. 죽지 않고 살았어.”          


그래, 나는 그동안 살.아.냈.어. 내가 죽지 않았다는 것.

그동안 내가 한 일이다. 나는 이 일이 세상 어떤 트렌드를 정복한 것보다 위대하게 느껴졌다.     


 




살았으니 이제 뭐든 하면 되겠구나.

무엇을 할지는 상관없다. 

이 대답을 얻은 순간부터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 보기로 했다.


1부의 막이 내리고 2부의 막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나를 본다.      

회색빛 덩어리로 웅크리고 있는, 상처투성이인 나.

그간 나를 애써 외면하며 지냈던 건 내가 미워서일까? 부끄러워서일까? 아니면,

역설적이게도 사랑했기 때문일까?


죽고 싶어 기도했고, 또 살고 싶어 기도했다.

어느날 문득 누군가 훅 던진 듯한 질문에,  '죽지 않았다'는 멋대가리 없는 대답.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답이 부끄럽지 않은 것을 보니,

아마도 나는 나를 사랑했던 모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