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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충돌할 때

톨스토이가 건네는 말

by 소리


충돌되는 마음은 아프다.

사고가 나고 다쳐서 뼈와 살에 상처가 나는 것 만큼이나 아프다.


특히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과의 마음 충돌은 더욱 그렇다.


사춘기 아이의 쾅! 하고 문닫는 소리,

"아프면 병원가면 되지, 왜 그래?" 전혀 공감못하는 무심한 말투,

"**는 강남 엄마 아닌가 봐요?"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닌 비꼬는 질문,

진짜 형제 자매님인 줄 알았는데 교회 옮기자마자 냉냉해진 기도회 멤버들,

같은 관심사에 진심을 다했는데, 자기 이익 앞에 발끈하는 인스타 친구.





이런 저런 사람들 세상에는 다양하니, 이제는 마음에 맷집이 생길 만도 한데,

사람이 주는 상처는 매번 나를 휘청이게 한다.


이런 나를 붙잡아 주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또다시 책의 소리, 문장이다.

몸이 아프면 약을 먹듯이 한 줄 한 줄 문장을 삼킨다.


하지만 우리가 한 사람에 대해 착하다거나 총명하다고, 또 다른 사람에 대해 악하다거나 어리석다고 말한다면 사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나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그것은 옳지 않다.

인간은 강과 같다.
어디에 있든 물은 똑같고 변함없다. 그러나 어느 강이나 좁고 빨라졌다가 다시 넓어지기도 한다. 잔잔해지고, 깨끗해지고, 차가워지고, 탁해지고, 따뜻해진다. 인간도 그렇다.

어떤 사람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성질의 싹을 자기 안에 품고 있다가 때로는 이런 성질을,
때로는 저런 성질을 발현하며, 여전히 같은 사람이면서 종종 본래 모습과 완전히 달라지기도한다.

몇몇 사람들에게서는 이런 변화가 특히 심하게 나타난다.

<부활1>, 레프 톨스토이, 연진희 옮김, 민음사, p.408



"아니, 저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혹은 "알고 보니 ~~~~~한 사람이었네!!

사람에게 받은 상처에 대한 반응은 이런 즉각적인 단언이다.


그런데 톨이토이의 시선으로 본다면, 이런 '분류'는 옳지 못하단다.

인간은 강과 같이 변화하지만, 여전히 물처럼 같은 면모를 가진 존재이다. 그런데 그 속에는 "모든 성질의 싹을 품고 있어서" 이런 성질 저런 성질이 때때로 발현되면서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는, 원래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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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인간관에 의하면,
나는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인간은 강과 같다'로 시작하는 그의 문장을 되뇌이면서, '내가 상처받은 이유는 나의 "일방적인" 정의로 이 사람을 "분류"해 놓았기 때문은 아닐지 의해 본다.


'A는 진실한 사람이야. 그(그녀)가 나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에는 거짓이 없어'

'B는 나와 많이 닮는 사람이야. 그러니 같은 마음이지"


그런데 A와 B에 대한 이러한 단정은 내가 '일방적'으로 그(그녀)에게 기대하는 바이지,

진짜 그 사람의 모습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인간은 자기 내부에 모든 성질의 싹을 다 품고 있는 존재, 그래서 상황에 따라 이런 성질, 저런 성질이 발현되는 존재이므로, 결국 그 사람에 대해 내가 정의한 분류는 전체가 아닌 '일부'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주위의 어떤 사람이든_설령 가족이라 할지라도

그(그녀)를 '한 가지 성질로, 한 마디 정의'로 '단정'짓는 것은 내 상처의 여지를 스스로 만들어 놓는 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보다는 '저 사람 속에는 여러 성질의 싹이 담겨 있을 테지... 이런 상황이 되니 보이지 않던 저런 성질이 나타나는 거구나.' 그렇게 톨스토이가 말한 인간성의 렌즈를 끼고 바라보려 애써 본다.



그러니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그 사람 속에 이런 저런 성질의 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사랑에 있어서는 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단어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 모두의 집합체인 그(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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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상처준 사람을 "나쁜 인간", "세상 이기적", "상식에서 벗어난 사람" 등등으로 깔끔하게 재단해 버리는 일은 사실 속이 시원하기 보다는 불편한 감정의 찌꺼기를 남긴다.



그러니 마음이 충돌할땐,

그 사람 자체를 보기 전에 '충돌된 마음'을 보기로 한다.


엄마의 잔소리가 싫은 아들의 마음,

병원에 안가고 혼자 끙끙대는 것이 답답한 남편의 마음,

강남사는 엄마에 대한 편견을 가진 그 학부모의 마,음

교회를 옮긴 나를 섭섭해 하는 신도들의 마음,

자기 이익 앞에선 돌변하는 지인의 마음,


이런 마음들은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 속에 품고 있었던 이런 저런 성질의 발현임을 기억한다. 물이 강 위를 흐르듯 이 마음 또한 그 사람에게서 흘러가 버릴 것이다.


흘러가 버릴 마음에 내 마음이 묶인다면, 도대체 무엇이 유익한가?

나 또한 흘려 보내 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톨스토이가 건네는 말에 나는 반창고 하나를 뚝딱 붙인 후, 다시 하던 일을 계속할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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