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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이 왜 좋으냐고 물으신다면,

사에즈리도서관의 와루츠씨

by 소리

계속해서 드는 의문.

책 읽는 사람은 계속 줄어든다는데,

책은 넘쳐나는 시대.

그렇다면, 학교때 배운 수요, 공급 곡선은 여기서만큼은 예외인가 싶다.


그래서일까?

막강한 디지털 파워로 무장을 거듭하는 AI, 온갖 디지절 자료와 전자책, 디지털 교과서가

몸짓을 불리고 있다지만, 종이책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는 힘들다.


종이책 vs 전자책.

나는 "압도적"으로 종이책을 더 좋아한다.

전자책의 훌륭한 장점도 있으니 병행해 볼까 몇 번을 시도해 보았지만,

이상하게도 종이책이 주는 몰입감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왜 1초도 생각않고 종이책이 좋다고 대답하는 걸까?

종이가 주는 느낌?

책장 넘기는 소리? 손짓?

.....



"압도적"으로 좋다라는 대답이 머쓱하게도

왜 그런가요?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그러던차에, 나는 종이책을 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선명히 깨닫게 된 책을 만났다.


<사에즈리 도서관의 와루츠씨>, 코교쿠 이즈키 지음, 김진환 옮김, 알토북스


몇 년간 변함없이 나의 책 벗이 되어주는 <함성독서>의 책사언니, 정예슬 작가님께서

직접 보내주신 책이다!!!



책의 배경은 종이책이 사라진 가까운? 미래.

모든 책과 자료가 디지털화되어 단말기에 저장된 시대에 종이책은 박물관에 전시된 문화재만큼 귀하게 여겨진다. 때문에 종이책의 가격이 중고차 한 대 값으로 매겨지기도 하는 세상이란다.



"세상에는 책이 넘쳐나던 시대가 있었다고 한다. 나이토와 친구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책이라고 하면 책의 모양과 감촉, 무게 같은게 맨 먼저 떠올랐다.
책은 참 신기했다. 그 큰 물건에 들어가는 정보라고 해봐야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런 물건이 많으면 집이 금세 발 디딜 틈도 없어질 것이다. 그런데도 다들 잡에 책을 많이 갖고 있었다며 선생님은 웃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종이도 잉크도 비싸다 보니 자칫하면 중고차보다 비싸질 수 있는 게 책이다. <사에즈라도서관의 와루츠씨>, p. 264



나는 이 책의 스토리보다도 등장인물들이 책에 대해, 종이책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태도들을 계속 주목하게 되었다.


우리가 지금은 당연하게 보고 느끼는 책의 무게, 질감, 냄새.... 그 모든 존재감이

매우 희귀하고 낯선 것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느끼는 이런 감정을 통해서 나는 내가 종이책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p.11)
도서관은 깨끗했고 특이한 냄새가 났다. 음식 냄새와 비슷해서 공복감을 살짝 자극하면서도 뭔가 가슴이 먹먹해지는 향기였다. 그게 종이와 풀 냄새라는 사실을 카미오는 알지 못했다.


p.43)
'아, 책 냄새구나!'
'그런데 왜 이러지? 뭔가....'
그립다.... 는 느낌이 들었다. 비슷한 장소에서 본 적도 없는데 향수가 솟구쳤다. 그런 감정을 자극하는 냄새였다.


p.58)
다시 한번 처음부터 읽기 시작하자 신기하게도 온 몸이 반응했다.
눈으로 입력된 활자가 머리 안쪽을 타고 목 깊숙한 곳, 그리고 손끝으로 퍼져나갔다. 책 속, 이야기 속의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p.88)
'아, 종이 냄새를 맡고 싶다. 무한 재활용이 가능한 대체 용지가 아닌, 진짜 종이 냄새.'


p.122)
저도 종이책을 꽤 좋아하지만, 책은 기호품이잖아요. 사치스런 취미랄까요.
책에 적힌 내용, 그러니까 데이터야말로 영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것이 굳이 종이책의 형태일 필요는 없지 않나요?"
(....)
와루츠씨는 가만히 서서 고래를 갸웃거렸다.
"데이터가 영혼... 이라는 점은 동의해요"
"하지만... 저는 이곳에 보관된 게 데이터가 아닌 종이책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고는 코토 앞에 놓여 있던 책을 한 권 슬며시 가져와 가슴에 안아 들었다.
"영혼만 존재한다면 이렇게 끌어안을 수는 없으니까요."


p.198)
'활자라는 단어 자체가 좋아'
거기엔 호흡이 있어. 증거가 있고, 색이 있고, 가능과 불가능도 있어.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에 새겨질 만한 감정이 있어."





책장을 덮은 후, 나는 좋아하는 책 한권을 꺼내왔다.

책 표지를 쓰다듬어 보니 왠지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듯 헀다.

책장 넘기는 소리도 들어보고, 정말로 향긋한지 종이 냄새도 맡아보고,

꼭 안아도 보았다.


"영혼만 존재한다면 이렇게 끌어안을 수 없으니까요."

사에즈라도서관에 있는 와루치씨의 목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내가 종이책을 압도적으로 좋아하는 이유.

나는 종이책이 주는 감정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스토리와 감동, 등장인물의 희노애락... 그야말로 책 속의 데이터뿐만 아니라,

책이 가진 무게와 질량, 감촉, 냄새, 손에 잡았을 때 느끼는 그 모든 존재감...

그것들을 나는 사랑한다.


종이책3.gif



핸드폰 속에 수십 권의 전자책이 있어도,

가방 안에 종이책을 챙겨나오지 못한 날에 느끼는 허전함과 불안함도

스스로에게 설명이 된다.



종이책 vs 전자책.

사에즈리 도서관의 와루츠씨가 사는 미래는 전자책을 선택했지만,

우리의 미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



"책은 죽게 된다."
마치 구원을 바라는 것같은 목소리였다.
와루츠 씨는 가슴에 책을 끌어안으며 안심시키듯 자신 있게 대답했다.

"책은 죽지 않아요."
그러더니 아름답게 미소 지으며 이어 말했다.
"다들 이렇게나 책을 사랑하고 있잖아요?"

<사에즈리 도서관의 와루츠씨>,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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