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연 저자 <미정의 상자> 리뷰
*산뜻하고 따뜻한 소설!
*아득한 우주, 무너진 세계!
*한 사람의 마음속이 하나의 우주라는 사실을, 감각적으로 알게 해주는 작품!
이 작품은 총 14편의 단편이 수록된 작품으로, 한 사람의 마음 속이 마치 하나의 우주처럼 느끼게 하는 작품으로, 산뜻하고 따뜻한 소설을 경험하게 되는 SF 소설집이다. 이 작품은 지난해 출간이 되었던 <앨리스와의 티타임>에 이어 두번째로 만나보게 되는 정소연 작가님의 작품으로, 두 챕터로 나뉘어져있다. 첫 챕터인 '카두케우스 이야기' 는 우주여행이 가능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연작소설로, 먼거리를 단숨에 건너갈 수 있는 '비상점' 이라는 것을 통해 먼 항성계 사이를 건너갈 수 있지만, '도약' 이라 불리는 이 초광속 비행 기술을 '카두케우스' 라는 회사가 독점하고 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두 번째 챕터는 재난상황을 테마로 한 퀴어소설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다. 표제작인 <미정의 상자>와 함께 <현숙, 지은, 두부>에서는 시간을 거슬러 삶의 다른 경우의 수를 탐색하는 상자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독특한 분위기와 상상력을 자극하게 되는 이 작품은 감동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과정을 보면서 진실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자신의 꿈과 가족을 위한 선택 사이에서 고민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이사>를 포함하여 해외에서 감염병에 걸린 친구를 찾으러 가는 <처음이 아니기를>, 사회적 재난이 아닌 개인적 위기 상황에서 클론 산업에 뛰어드는 인물을 다룬 풍자소설 <수진>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번 작품에서 주목할 점이 하나 있다. 바로 동성 간 사랑을 소재로 삼아 차별과 편견, 소외, 아웃팅 등의 문제를 다룬 퀴어소설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다.
현실적인 상황으로 인해 안타깝게 이별하는 이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이들을 그린 이 작품은 탁월한 감수성과 더불어 이야기가 섬세하여, SF 소설이 어렵다고 하시는 분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가족과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채 위기 상황에 직면한 이들을 그린 <미정의 상자>는 그들의 절실함, 자신의 사랑을 희생해서라도 상대방을 구하려는 모습에 간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저자가 그린 인물들은 지독한 상실에 걸려 넘어지면서도 어깨를 한 번 으쓱으쓱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그렸다. 이별에도 잃지 않는 마음들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그것이 자신을 이루고 있음을 기억하면서, 서로의 안녕을 빌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이다.
이 작품의 주제는 인간의 내면 탐구와 인간의 관계이다. 인간의 마음 속이 마치 하나의 우주와 같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이 작품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발견하는 과정을 보면서 사람들 간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감정들의 복잡함을 이해하게 된다. 감동적인 이야기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하게 하는 이 작품은 자기 자신과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저자의 풍부한 상상력과 더불어 저자의 감성적인 필체로 전에 읽었던 <앨리스와의 티타임>때도 그랬지만, 가독성과 흡입력도 좋아서 하루만에 다 읽을 정도로 SF 소설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 각 단편 속에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내용들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주인공들이 겪는 갈등과 그리고 희망과 절망들을 보면서 자신의 삶과 감정을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다. 또한 저자의 풍부한 상상력과 현실이 교차하는 세계를 아주 섬세하게 그려내어 마치 한편의 SF 드라마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몰입감이 좋은 SF 소설집이다. <미정의 상자>는 문체와 서사가 아름다워서 읽는내내 따뜻한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의 뛰어난 문장력과 깊이 있는 이야기가 빛나는 이 작품! 감동과 생각할 거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미정의 상자>를 추천한다.
*정소연 작가소개*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철학을 전공
¤2005년 과학기술 창작문예 공모에서 스토리
맡은 만화 <우주류>로 가작을 수상하며 활동을
시작한 이래 소설 창작과 번역을 병행해왔다.
¤<EPI>, <오늘의 SF> 편집위원,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초대 대표로 일했다.
¤대표작
*필사하기 좋은 글귀 *
하정의 사랑은 신중했고, 조용했고, 따뜻했다. 유나는 하정의 사랑이 좋았다. 처음에는 신기하고 좋기만 했다. 그다음에는 조금씩 더 좋아졌다. 행복은 점점 더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어갔다. 행복은 식탁에 앉아 차를 마시며 그날 하루 일터에서 있었던 일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하정이 되었다. 식후의 티타임은 의식이 되어 유나의 일상에 들어왔다.
P.49 중에서
우주에는 긴 인연이 없다. 우주선 또한 좋은 공간이었다. 큰 공간이 작은 공간, 더 작은 공 간으로 분명히 나뉘었다. 우주에 만들어진 모든 공간에 는 용도가, 모든 사람에게는 목적이 있었다.
P.115 중에서
우주비행사는 고독한 직업이다. 오랫동안 혼자 있어도 괜찮은 사람이 유리했다. 타인을 필요로 하는 사람보다는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 나았다. 사람을 너무 싫어하면 곤란하겠지만, 조금 불편해하는 정도는 괜찮았다.
P.115 중에서
선생님이 저한테 가르쳐주셨던 것 중에 표준어가 가장 재미없었던 것 아세요? 게다가 저한테 가르쳐주지 않으셨던 게 아주 많다는 것도 나가서야 알았어요. 선생님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왜 여기로 오셨었는지. 왜 잘 생각해보라고 하셨었는지, 저 이제는 알아요. 그때는 그냥 어떻게든 우주로 나가기만 하면, 선생님이 경험한 걸 저도 해보기만 하면 선생님한테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P.158 중에서
무한한 슬픔은 크기가 같아서 더 큰 슬픔과 더 작은 슬픔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어. 아니야. 아침 햇살을 받아 선명하게 빛나는 나무를 보고 비 온 뒤에도 세상이 맑고 아름답다고 감탄했다가 원래 여기는 새벽안개가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슬펐어. 더 작은 슬픔이 더 큰 슬픔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듯이 슬펐어.
P.172 중에서
우주비행사가 되는 것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모든 상황을 대비하고 모든 경우의 대응을 준비한 특별한 사람들만 우주비행사로 우주에서 죽을 기회를 얻는다. 나는 우주인의 방식을 배웠다. 본사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의심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죽음을 준비한 사람을 사랑한 사람의 죽음까지는 준비하지 못했다.
P.215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