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모토 세이초 작가에 대하여.
일본 최고의 문인 , 일본 문학의 거인이자 진정한 국민 작가 ! 마쓰모토 세이초 작가에 대해 알아본다.
마쓰모토 세이초작가에 대하여...
일본의 추리소설가이자, 단순한 추리소설가가 아닌, 거장으로 추앙받는 작가이다.
일본 문학의 거인이면서도 진정한 국민 작가인 마쓰모토 세이초는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시한 작가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사회파 추리소설의 아버지.
일본 추리소설 여왕인 미야베 미유키 작가가 직접 세이초의 장녀로 자처하고 있을 정도.
미야베미유키 작가뿐만 아니라,우리가 알만한 추리소설 작가인 요코야마 히데오, 모리무라 세이이치, 기리노 나쓰오, 다카무라 가오루 등 세이초 월드를 이어가고 있다.
마쓰모토 세이초 작가의 삶, 인생에 대하여...
1909년, 호적상에는 키타큐슈의 코쿠라이지만, 실제로는 히로시마 현 히로시마 시에서 태어났다.
세이초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가난한 집안을 부양하기 위해 이타비쓰 심상고등소학교만 마치고 바로 취직해야만 했다. 아버지가 잡역부 등 막노동을 하며 생계를 꾸리는 등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세이초 작가는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신문기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책을 읽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을 나온 사람이 아니면 신문기자가 될 수 없는 환경에 꿈은 좌절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27살때 지사장에게 용감하게 편지를 써서 신문기자로 아사히신문에 입사하였다. 근데 학력차별로 다시 한번 좌절했다고 한다. 평소 교련에 잘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집이 되어 입대하게 된다. 이듬해 6월에 전속되어 위생병으로 근무하게되지만, 일본의 패망을 맞고 귀국하였다. 1944년에 임시 소집으로 구루메 시 제86사단 보병 제187연대에 입대, 다시 보병 제 78연대 보충대외 소속되었다. 원래는 뉴기니 갈 부대였으나, 예정과 달리 한국 경성부 용산에 주둔하여, 1945년 전라북도 정읍에 배치되었다고 한다. 패전을 정읍에서 맞이한 후 본국으로 송환이 되어, 귀국한 후 아사히 신문사로 복귀하였다고 한다.(한국에 1~2년 정도 머물렸다고 한다.)
마쓰모토 세이초 작가 데뷔한 배경에 대하여....
생계를 위해서 근무 중에 쓴 사이고사쓰가 주간 아사히의 백만인의 소설에 응모가 되어 총992편의 작품 중 3등으로 입선하면서 1951년 늦은 나이인 42세에 등단하게 된다. 원래는 등수가 높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사히 신문사 직원이라는 이유로 밀려났다고 한다. 왜 그랬는지 잘 모르지만...
마쓰모토 세이초 작가의 작품들에 대하여....
1952년, 미타문학에 어느 고쿠라 일기 전을 발표. 이 어느 고쿠라 일기 전은 당초 나오키상 후보가 된 작품이었지만 낙선한다. 그러나 당시 나오키상 심사위원이었던 나가이 다츠오에 의해 이 소설은 나오키상이 아니라 아쿠타가와상에 더 적합한 작품이라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후에 아쿠다가와상 선고위원회에 넘겨지고 마침내 제 28회 아쿠다가와상을 수상하였다.
1955년, 세이초는 최초의 사회파 추리소설을 발표한다. 그 작품이 바로 잠복이다. 단순히 트릭에 매몰되지 않고 일반적인 순문학 소설처럼 인간성이 드러나는 깊이있는 추리소설을 읽고 싶다고 말하던 세이초는 그 이후로도 제 10회 일본탐정작가클럽상 등을 받은 단편집 <얼굴> 등 수많은 추리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1958년에, 발표하여 베스트셀러가 된 추리소설 <점과 선>, <눈의 벽> 은 범죄의 동기를 중시한 사회파 추리소설로 불리며 세이초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심지어 세이초 이전, 세이초 이후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마쓰모토 세이초에 대인관계에 대하여...
대인관계의 폭이 썩 넓지 않았다고 한다. 파칭코 외에는 취미도 거의 없는 단조로운 생활을 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딱히 어두운 성격은 아니었고 친한 사람에게는 유머감각도 꽤 있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다만 딱히 문학계의 후계를 양성한다든지 제자를 키운다든지 하는 일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후배 작가들에게 경쟁심을 불태우면서 냉담하게 대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세이초에게 차가운 대접을 받았던 경험이 있는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회고에서 그에게 대놓고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마 이렇게 해야만 했던 이유가 어린 시절을 너무나게 혹독하게 살아왔고 가난과 학력에 대한 컴플렉스가 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소설에서도 인텔리에 대한 반감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정도라고 하니, 후배들에게 격려는 보다는 냉담하게 대했던 이유도 본인 스스로가 척박한 환경에서 아무의 도움도 없이 홀로 자수성가했던 경험 때문이라고 한다.
마쓰모토 세이초에 마지막 삶에 대하여....
1992년, 임종을 맞을 때까지 편수로 1000편 이상의 작품을 남기고 수준 높은 작품을 단기간 내에 초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어마어마한 작밀례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와 같이 끊임없이 노력하며 스스로 공부하고 여러 장르에서 대활약을 펼친 그는 실로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라고 무방할 정도. 죽기 3년전인 1989년 6월10일에 세이초 자신의 유서에는 '나는 노력만은 해왔다' 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마쓰모토 세이초에 그 외.....
¤1998년 , 고향인 기타큐슈 시립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이 개관하였다. 바로 고쿠라성 옆에 있다고 한다.
¤2009년 , 기타큐슈 시에서 마쓰모토 세이초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을 주도한 바 있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대표 작품 목록들 (한국에 출간된 작품들로만)
°10만분의 1의 우연
°모래그릇(마쓰모토 세이초 작품 중 대표작이자, 무려 8번 영상화 되기도 했다.)
°점과 선
°잠복
°시간의 습속
°푸른묘점(5월에 읽을 예정)
°역로
°D의 복합
°일본의 검은 안개
°제로의 초점
°미스터리의 계보
°짐승의 길
°너를 노린다
°불과 해류
°검은 화집
°바다에 남긴 유언
°블랙 유니버시티
°필사의 게임
°적색등
°나비성
°파도의 탑
°함정
°동경제국대학
°땅의 손가락
°특종을 노리는 사회부 기자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 중 , 하)
°검은 가죽 수첩
°구형의 황야 (상, 하)
마츠모토 세이초상에 대하여...
°세이초 사후 1년 뒤인 1993년에 창설된 소설 공모 신인상이다. 이 상은 아쿠타가와상이나 나오키상을 주최하는 일본문학진흥회에서 주최하고 있다. 수상작은 대체로 운영주체인 문예춘추에서 출간된다. 부상으로는 시계와 500만엔의 상금이라고 한다.
°여기에 대표 작가는 국내에서도 유명한 5회 수상자이기도 한 요코야마 히데오가 세이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추천하는 마쓰모토 세이초상의 작품소개...
전후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이 담긴 사회파 미스터리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인 마쓰모토 세이초의 대표작이기도 한 작품 <모래그릇>은 세이초 작품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소설이기도 하다. 5번에 걸쳐 TV 드라마로 만들어질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기도 한 작품이기도 하다. 참고로 쭈양뽀야가 마쓰모토 세이초 작품 중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마쓰모토 세이초 작품에 빠지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196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신원불명의 시체와 살인사건에서 시작하여 전후 혼란스러운 일본 사회의 모습과 그로 인해 희생될 수 밖에 없었던 개인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약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어떤 비극을 불러오는지는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줄거리*
어느 새벽, 전차 조차장에서 얼굴이 뭉개진 채 남자의 시체가 발견이 된다. 경찰은 수사를 시작하지만 실마리는 전혀 잡히지를 않는다. 그 중에 알아낸 것은 피해자가 도호쿠 지역 사투리를 쓴 것 같다는 증언과 ' 가메다' 라는 단어뿐. 베테랑 형상 이마니시는 미궁에 빠질 것 같은 사건에 끈질기게 매딜리며 조사를 계속한다. 하지만 수사기 진행이 될때 마다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되고...
사회파 추리소설의 시작을 알린 걸작
<점과 선>은 사회파 추리소설의 걸작으로 꼽히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첫 장편소설이다. 1957년 2월부터 1958년 1월까지 잡지 <여행>에 연재된 작품이다. 같은 시기에 다른 잡지에 연재한 <눈동자의 벽>의 반응이 폭발적이었지만, <점과 선>은 그렇지 못해서 세이초는 실망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연재가 끝난 후 한 달 뒤인 1958년 2월에 고분샤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되고, 도쿄 역 13번 플랫폼의 숨겨진 4분간 등이 화제가 되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점과 선> 붐이 일어나게 된다. 이것은 마침 이 연재를 애독하고 있던 고분사의 편집자 마쓰모토 교코가 <점과 선>의 단행본화를 윗선에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그 결과 <점과 선>을 단행본으로 출간하게 되었고, 1958년 세기의 베스트셀러로 탄생한 작품인 <점과 선>이다.
*줄거리*
아카사카의 요정 고유키에서 일하는 두 명의 종업원은 단골손님인 기계 공구상 야스다 다쓰오를 바래다주러 도쿄 역 13번 플랫폼에 서게 된다. 그곳에서는 15번 플랫폼이 보였는데 동료 종업원이 오토키가 낯선 남자와 함께 하카타행 침대 특급 아사카제에 오르는 중이었다. 남자는 부정부패 사건으로 이름이 거론된 어느 회사의 과장 대리 사야마 겐이치였다. 하지만, 6일 뒤, 오토키와 중앙 관청의 과장대리 사야마 겐이치의 시체가 후쿠오카 가시이 해안에서 발견이 된다. 둘은 청산가리가 들어간 주스를 마시고 동반 자살을 한 것으로 보였지만, 후쿠오카 경찰서이 베테랑 형사 도리카이 준타로는 사야마가 소지하고 있던 열차 식당의 영수증이 '1인'으로 되어 있는 것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동반 자살을 하러 가는 남자가 여자를 두고 혼자서 식당에 간다? 같은 무렵 사야마가 소속된 어느 회사의 부정부패 사건을 조사하던 경시청의 미하라 기이치 경위도 사야마의 죽음의 의혹을 느끼게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