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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스톤 Oct 06. 2018

"그 책, 누가 기획했어요?"

“그 책 누가 기획했어요?”

책 만드는 일을 하다 보면 “그 책 제목 누가 지었어요?”만큼 자주 듣는 질문이다.

아마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의 의도를 헤아려보면, “책이 재미있으니(혹은 잘 팔리니) 그 책을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알고 싶습니다.”일 것이다.

그런데 왜 다들 “어떻게가 아닌 누가 기획했어요?”라고 묻는 것일까. 기획을 창의적 아이디어나 개인의 특별한 재능으로 바라보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기획을 생각의 단초라 칭할 수는 있겠지만, 특정인의 역량이라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좋은 기획은 ‘아이디어(니즈, 문제 찾기) + 시도(저자 발굴) + 실행(글쓰기) + 마케팅 + 운’의 총합이며, 기획은 함께하는 것이다. 적어도 출판기획에서는 그렇다고 믿는다. 뛰어난 출판기획자라 불리는 사람있다면, 이 모든 단계에 참여하며  담당자들이 각자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조율하고 돕는 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누가 기획했는지 묻는 것은, 기획이 개인의 경험칙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어나 자라면서 일상의 경험을 통해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는 감각을 체득한다. 일종의 실천적 지식이다. 기획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상황에서 의미 있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뾰족한 감각을 익히고, 더 좋은 결과를 낳는 자기만의 방식을 갖게 된다. 문제는  방식(How to)을 나누기가 쉽지 않다는 것인데, 이 책 <기획은 패턴이다>의 저자들도 같은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그렇다, 이 글은 본격 책 홍보 포스팅이다!) 저자 중 한 명인 이바 다카시 교수의 이야기다. 

 

“저는 어떤 것을 만드는 사람, 만들어내는 사람의 발상이나 방법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소설가, 예술가, 과학자, 기업가의 책과 인터뷰 기사를 많이 읽는 편인데요. 그런 분들은 대개 본인의 방식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본인이 지속적으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대단히 신중히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거쳐 실천에 옮깁니다.

일례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런 사람입니다. 글 쓰는 직업인 만큼 자신의 방식에 대한 책도 여러 권 썼는데,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등을 읽어보면 나름의 독자적인 패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인이 어떤 방식을 적용하고 있고, 거기에는 이러저러한 이유가 있다고 자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나의 방식이 모두에게 통할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내 방식을 소개하는 것이 뭔가 의미는 있을 것이다’는 생각에 책으로 펴냈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자기 나름의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될지는 우리도 알 수 없어요. 그래서 일상에서는 자신의 방식을 타인에게 전수하는 경우가 좀처럼 없습니다. 후배를 키우거나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았을 때가 아니라면 자신의 방식에 대해 말할 기회가 많지 않죠. 이렇게 개인의 경험과 경험칙은 블랙박스가 되어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는 상태로 묻혀 버립니다.”


책의 저자인 가지와라 후미오 UDS 대표와 이바 다카시 교수는 자칫 사라지기 쉬운 개인의 경험칙을 공유하기 위해 ‘패턴 랭귀지’에 주목했다. 패턴 랭귀지는 건축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가 좋은 거리와 건물에 숨겨진 패턴을 언어화한 데서 시작된 것인데, 이 책에서는 그 개념을 차용해 무지호텔 베이징, 도쿄 클라스카 등을 설계한 UDS 가지와라 대표의 기획방법론을 32개의 패턴으로 만들었다. 패턴 랭귀지는 개인의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는 새로운 언어인 셈이다. 가지와라 대표는 좀 더 실무적인 입장에서 이 책을 쓴 이유를 밝힌다.


“제가 기획의 요령을 패턴으로 정리하게 된 계기도 다르지 않습니다. 5년 전에 UDS 중국법인을 설립한 이후 1년 중 상당 기간을 중국에서 보내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도쿄의 사무실에서 각각의 프로젝트에 대해 직원들과 의견을 나눴는데, 제가 중국에 있느라 한 자리에서 회의할 기회가 없어지니 진행과정이 삐걱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사고방식이나 일처리 방식의 요령을 직원들에게 정확히 전달하지 못한 제 불찰이었죠. 더 늦기 전에 제가 그 자리에 없어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회사가 성장하면서 직원이 늘어나니 예전처럼 직원의 기획을 일일이 확인하는 게 불가능해졌을 것 아닙니까? 제가 없어도 어느 수준까지는 직원들끼리 기획을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이 절실하게 필요했습니다. 이것이 ‘기획의 요령’을 패턴 랭귀지로 정리하기로 결심한 첫 번째 이유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제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입니다. 옛날에는 저도 즉문즉답하듯이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는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아무래도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더 늦기 전에 아이디어 떠올리는 방법을 정리하지 않으면 기획의 질이 올라가지 않겠다는 위기의식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최근 몇 년간 제 과제였습니다. 그래서 패턴 랭귀지를 사용해 최대한 효율적으로 ‘기획의 요령’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책에서 가장 크게 공감했던 부분이다. <기획의 정석>, <기획은 2형식이다>, <기획자의 습관> 등 기획이라는 단어를 입은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이유는(왜 우리 책은 없는가!), 손에 잡히지 않는 기획의 모호함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기획이 어렵지만, 초보 편집자 시절에는 기획회의에 들어가기가 야근보다 더 싫었다. 그놈의 기획 때문이었다.


“우리도 누구(셀럽 혹은 대형작가) 책 한 번 내보지?”, “○○출판사 책 같은 거 기획해봐.”

사장님의 한마디에 회의 분위기는 지나치게 차분해졌다(갑분싸를 떠올리면 된다). 신입, 그것도 중고신입이었던 내 머릿속은 더욱 어지러웠다.

‘방법을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기획안을 써오라는 거야. 다음주에는 무조건 연예인 누구 책을 내자고 써 가야지. 일단 기획은 기획이니까.’

하지만 결국 나는 양심상 연예인이 저자인 기획안을 쓰지 못했다. 연예인과 줄이 닿을 도리도 없었고, 무조건 저자만 잡아오면 만사형통이라는 식의 기획에 동의하지 못했다.


지금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잘나가는 책을 기획해보자던 사장님의 마음도 이해가 되고, 애초 기획은 어떻게 하라고 답을 줄 수 없는 것이구나, 하고 자각할 정도의 구력은 생겼다. 기획 천재가 아니어도 출판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법도 운 좋게 터득했다. 하지만 기획에 정답은 없을지 몰라도, 더 좋은 기획에 대해 서로 소통하는 법, 좀 더 쉽게 기획하는 법은 분명 존재한다. 저자들의 말처럼, 경험이 패턴이 되면, 지혜가 될 수 있다!


이 책 한 권으로 기획의 내공이 생길 리는 없겠지만, 적어도 기획에 대한 어려움은 조금 덜어낼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내친 김에 <기획은 패턴이다>에 실린 32가지 패턴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들을 골라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누가 나에게 출판기획에 대해 묻는다면, 뭐라 말할지 생각하면서.

 

1. 나만의 기획철학을 갖고 있는가?
2. 숨겨진 욕구를 찾을 수 있는가?
3. 일상의 우연을 활용하고 있는가.
4. 실패사례를 연구하고 있는가?
5.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가?
6. 타인의 관점에서 검토해봤는가?
7. 미래를 반영한 기획인가?


다음에는 북스톤 책들을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는지, 이 7개의 패턴과 함께 이야기해볼까 한다(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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