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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스톤 Oct 08. 2018

"내 옆에 기획자가 있다?"

경험하고 공감하고 함께하는 마케터의 일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출간된 모든 책이 <언어의 온도> 같은 맹목적 사랑과 지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저자와 출판사와 친인척과 친구로 구성된 독자 수백 명 말고는 나온지도 모른 채 사라지는 책들이 부지기수다. 쓰면서도 가슴이 아프다. 핑계 같지만 요즘처럼 짤막하고 감각적인 콘텐츠가 환영받는 시대에(그것도 모자라 영상을 택하는 시대에) 경제경영서를 알리는 것은 도전에 가깝다. SNS를 아무리 탈탈 털어봐도 올라오는 리뷰도, 해시태그도 몇 개 없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출간 7개월이 채 안 된 시점에 인스타 해시태그 2907개, 네이버리뷰 153건(무려 평점 9.4)의 리뷰를 기록한 책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 책 <마케터의 일>이다(문학 책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숫자이지만 작은 출판사로서는 대단한 성과다. 뿌듯하다).

책의 인기와 '꼭 한 번 같이 일해보고 싶은 상사'로 대변되는 작가 덕분에 출판사도 여러 번 칭찬을 들었다.   


"와, 정말 이렇게 읽기 쉬운 경영서는 오랜만이에요."

"표지도 예쁘고, 책도 예쁘고, 책은 금방 읽는데 여운은 오래 남아요."

"후배에게 꼭 한 권 사주고 싶어요."

"이건 마케터의 일이 아니라 모든 직장인의 일 얘긴데요. 더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어요."


'마케터의 일'이라는 다소 심심한 제목을 달고, 마케터들이 과연 책을 많이 읽기는 할까 하는 우려 섞인 마음으로 낸 책치고는 '히트'를 친 셈이다.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진짜 감사한 일은 따로 있었다. 사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공'이 있었다. 안 그런 책이 없겠지만 이 책은 기획부터 그랬다.

   


"실장님, 실장님. 그런데 왜 우리 이사님 책은 안 내세요?"
"응?"


저자인 장 이사님과는 <나음보다 다름>  홍보강연 청탁이 인연이 되어 <배민다움> 을 만들 때도 많은 도움을 받았던, 술친구가 되기 직전의 적당히 가까운 사이였다. 그래서인지 책을 낼 생각도 없었고, 저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배민의 이야기는 멋진 책으로 나와 있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배민의 이승희 선임(이하 숭)이 술자리에서 나와 저자를 앉혀두고 불쑥 위의 질문을 던진 것이다. 뭐라고 답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저자가 열심히 쓰겠다고 해도 잘될까 말까인데, 옆에서 부추긴다고 책이 나오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괜히 책 낸다고 했다가 좋은 관계 망치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숭은 나의 곤란한 표정을 읽지 못했는지 계속 얘기를 이어갔다.


"저희 팀 회의 때마다 이사님 어록 쏟아지거든요. 실장님. 진짜 좋아요.., 다들 인성 이사님 책 나오면 사본다고 하는데 (쉬지 않음)..."


결국 저자도 나도 이렇다 할 결론 없이, 그날의 술자리는 무사히 끝났다. 그리고 얼마 후, 사실은 시간이 좀 지나서 저자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특유의 애매한 목소리로.


"그때 숭 얘기를 듣고 생각해 봤는데요. 책을 아직도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는데요. 일단 책을 내도 되는지, 책을 낸다면 실장님과 상의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요, 상의하는 게 뭐가 어렵겠어요."


그렇게 시작된 미팅. 적당히 친한 사이에서 예비 저자와 편집자로 마주앉으니 왠지 어색했다. 민망함을 떨치려고 음식만 신나게 먹다가, 책에 대한 얘기가 슬그머니 시작되었다. 역시 알던 사람과의 책 출간은 좀 새롭지 않은 걸까,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질문과 답변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책을 쓴다면 누가 읽으면 좋을까요?"
"최경진이요."
"어, 왜요?"


당시 경진 님은 우아한형제들 @년차(?)마케터였다.


"얼마 전 경진이랑 상담을 했는데 일을 잘하고 싶은 친구여서 고민이 많더라고요. 딱 경진이가 이런 책을 읽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때 뭔가 마음이 쿵했던 것 같다.

일 잘하고 싶은 팀원을 위해 책을 쓰고 싶다, 라니.

고백하자면 나도 일을 잘하고 싶은 때였다.

편집도 편집이지만 마케팅을 잘하고 싶었기에(=책을 잘 팔고 싶었기에) 더욱더 그 답에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뭔가 잘하고 싶은데, 참 쉽지 않은 일. 손에 잡히지 않는 일. 그러나 누구나 해야 하는 일.

그게 마케터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때부터 저자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졌다.

나는 질문하고, 저자는 대답하고.

저자의 답변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꽤 훌륭했다.

무얼 물어봐도 자기 생각을 들려주었다.  


"질문에 답을 잘하시는데요?"(예상 외다!)
"제가 뭐 물어보는 거에 대답은 잘해요. 그건 잘할 수 있어요."
"그럼 그렇게, 편하게 써보기로 하죠."

그렇게 <마케터의 일>은 시작되었다.

상사를 채찍질한 마케터와 일을 더 잘하고 싶은 마케터의 열정과, 그에 부응한 상사의 마음이 모여서.


쓰다 보니, 너무 길어졌네요. 뒷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단언컨대, 술자리에서의 압력이 아니었으면, 저자에게 책을 내자고 제안하지 않았을 거예요. <마케터의 일> 편집자로서 제 역량을 돌아보게 해준 동시에, 우리 주변에 기획자가 있다는 교훈을 얻은 사례입니다;;


기획자로서 지식과 정보 수집에 신경 쓰고 있는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얼마나 편향돼 있는지 의식하면서 부족 한 분야의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대화를 나누다 모르는 주제가 나올 때가 좋은 기회다. 또는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잡지를 일부러 읽으며 그 쪽 세계를 접하는 것도 좋다. 짬이 나면 서점에 들러 새로운 정보를 얻는 습관을 들인다. 몸의 영양균형을 유지하는 것처럼 자신에게 부족한 정보를 신경 쓰면서, 한쪽으로 정보가 치우치지 않도록 계속 노력한다. - <기획은 패턴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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