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스톤 Oct 08. 2018

그렇다면 당신도 마케터입니다.

경험하고 공감하고 함께하는 마케터의 일

옷을 정말 잘 입는 사람은 명품이나 유행하는 옷이 아닌,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고르고 소화하는 사람일 것이다.저자도 마찬가지다. 유려한 문장이 아니어도 자기만의 표현과 문체로 쓰는 글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김훈이나 하루키처럼. 


컨텐츠도 같은 맥락이다. 막상 읽어보면 '나도 할 수 있는 얘기인데...'라고 느끼는 책들도 적지 않다. 비슷비슷한 내용을 다룬 책도 많다. 그래서 더욱더 '그 사람이기에 쓸 수 있는 글'이 독자에게 어필한다. 


서두가 길었다. 저자인 인성님은 책을 어떻게 쓰느냐며 엄살부리던 모습과 달리 떡하니 '마케터의 일'이라는 컨셉을 들고 왔다. 샘플원고도 들고 왔다. 처음 몇 줄을 읽자마자 엄청 잘 쓴 글인지 판단하긴 이르지만 장인성이니까 쓸 수 있는 원고가 나오겠구나 싶었다. 저자는 자신을 너무 잘 이해하고 있었고(자기애가 엄청나다. 좋은 의미로!), 자기다운 것이 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컨셉뿐 아니라 자신의 글과 딱 맞는 그림을 그려줄 친구도 섭외해왔다. 

함께 일하는 배민문방구의 뀰(규림)이었다. 규림이와는 다른 책에서 삽화를 함께 해보려다 무산된 적이 있었기에 더욱더 같이 작업해보고 싶었다. 둘의 조합도 환상적이었다. 뀰이 그린 저자의 일러스트는 인성님과 똑같기도 했지만 그냥 책과도 너무 잘 어울렸다. 


그러나 일이 술술 진행되었음에도 첫 번째 고비가 찾아왔다. 저자가 '초초초초초초초초고'를 완성해왔는데, 내용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러니까 무슨 의미인가 하면, 지금 자신이 하는 일과 함께 일하는 동료들, 몸담고 있는 조직과 회사를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살짝 이상적인' 이야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과연 배민이 아닌 조직에서도 가능한 시나리오일까?' 그 점을 보완해야 했다. 


하나 더, 마케터를 다루고 있었지만 결국은 '일 잘하는 사람'의 이야기였기에 회사 선배의 잔소리(내지는 꼰대질)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는 점이었다. 


다행히 저자는 자기 글의 한계를 이미 잘 알고 있었고, 피드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2017년 12월 18일, 마무리한 초고를 들고 저자와 나는 뀰의 집에서 피드백 미팅을 하기로 했다(죄 없는 뀰...) 심지어 다음날 발표를 하느라 야근을 하던 숭까지 소환되었다. 그리고 매우 늦은 시간까지 피드백, 또 피드백이 이어졌다. 그 후 저자는 매우 괴로워하면서 다시 원고를 고쳤고, 브랜딩 실 팀원들은 24님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시시때때로 찍어 보내주었다. 그리고 다시 완성된 2차 초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아진 글이었다. 


"와, 6점짜리 원고였는데 9점이 됐다." 


두 번째 탈고한 원고를 보고 함께 읽었던 친구들에게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난다. 누군가의 글을 점수로 표현한다는 것은 참 유치한 일이지만, 그 정도로 원고가 달라졌음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엔 나의 위기이기도 했다. 이제는 브랜딩 실의 모든 친구들, 배민의 마케터들, 다른 회사의 마케터들까지, 원고를 읽고 피드백을 주었다. 이런 이야기를 넣어달라, 에피소드를 넣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선배 마케터와의 고민상담이 우리의 원고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피드백의 스펙트럼도 다양했다. 아주 소소한 것도 있었고(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그 정도로 꼼꼼하게 읽은 분들이 놀라웠다!) 핵심을 간파한 것도 있었고, 기발한 내용도 있었고, 구체적인 사례들도 있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대체 이 열정과 관심과 성의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저자는 이걸 어떻게 다 듣고 소화하는 걸까?"


그때는 이 책을 잘 내야겠다는 담당자의 입장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그러한 과정을 지켜보는 제3자의 입장이 되었다. 야근하면서도 동료의, 상사의 원고를 읽고 피드백을 주다니. 다양한 피드백을 정리하고, 자신의 글에 그것을 적절하게 입히는 저자의 내공도 놀라웠다. 그 결과 저자와 딱 어울리는 책이 나왔다. 

<마케터의 일>이라는 제목을 단 <마케터 장인성의 일>. 

판매부수로 책의 모든 것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마케터가 쓴 책인데 안 팔리면 정말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출간 일주일 만에 2쇄를 찍었고, 첫 주에 교보문고 경제경영 6위, 두 번째 주에 4위를 차지했다. 불황인 출판시장의 현실과 경제경영 분야의 사이즈를 감안하면 꽤 만족스러운 결과이고, 7개월이 지난 후에 8쇄를 찍었고, 전자책에서도 꽤 선방했으며, 오디오북도 준비중이다.





되는 방법을 찾는다. 안 되는 이유 말고.


여러 모로 만족스러운 책이 나온 이유, 아니 답은 이미 책 안에 있었다. 


책에 참여한 어느 누구도 '안 되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대신 '되는 방법'을 찾았다. 이 책의 제목은 <마케터의 일>이 아니라 <회사원의 일>이라던 누군가의 리뷰처럼, 일 잘하는 법과 태도에 대한 내용이 많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 원고를 읽으며 내가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 자꾸 점검하게 됐다. 그때 가장 꽂힌 단어가 바로 '되는 방법'이었다. 



"성공의 경험을 쌓아갑시다. 되는 경험을 심어줍시다. 경험에는 관성이 있습니다. 무슨 말만 하면 자꾸 안 된다고 하니까 제안하는 사람도 스스로 안 되는 이유를 먼저 찾는 게 아닐까요? 되는 방법부터 찾고, 되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경험, 그 경험의 힘으로 본능적 두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 <마케터의 일> 중에서. 


그렇게 이 책은 만들어졌다. 에세이스러운 문체도, 경영서에서는 잘 쓰지 않는 백색 제목과 크라프트지 표지도, 규림의 데뷔도, 카피스럽지 않은 카피도 전부 '되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나는 이 책이 앞으로도 계속 잘 팔리면 좋겠다. 우리 회사에서 나온 책이어서가 아니라, 정말 개인적으로 잘 팔리면 좋겠다. 이제껏 책을 파는 일보다는 그래도 책을 만드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하며 일해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책을 '파는', 아니 무언가를 파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감하고 있다. 책이 나와도 기쁘지 않을 때도 많았다. 공들여 만들어서 내놓긴 했는데 이 험난한 세상에서 이 책이 잘 살아남을지, 걱정 많은 부모의 마음이 들었다. 그러한 자괴감과 극심한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이 책을 만들면서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마케터도 아니면서 마케터처럼 일하는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띠지에 썼다. 



"무언가에 푹 빠져본 적 있나요?"
"나만의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나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싶은가요?

그렇다면 당신도 '마케터'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내 옆에 기획자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