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등불 되어
죽음은 언제나 멀리 있는 그림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어느 날 심장은 예고 없이 나를 쓰러뜨렸고, 그 순간 나는 삶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응급실의 눈부신 불빛, 다급하게 오가는 의료진의 목소리, 들쑥날쑥한 심전도 그래프. 그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끝’이라는 단어를 온몸으로 체감했다.
그때 떠오른 것은 책이었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속 주인공이 겪었던 고독과 공포가 내 앞에 겹쳐졌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했지만, 더 큰 고통은 자신이 진실을 외면한 채 살아왔다는 사실이었다. 가족이 곁에 있었으나 누구도 그의 내면에 닿을 수 없었다. 나는 그 장면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혹시 나 또한 진정한 삶을 외면한 채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이데거는 인간을 “죽음을 향해 사는 존재”라 했다. 우리는 죽음을 외면하며 살지만, 죽음을 직면할 때에야 비로소 삶의 본질을 이해한다. 내게도 죽음은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내 삶을 비추는 가장 정직한 거울이었다.
철학이 던지는 질문만으로는 버틸 수 없었다.
그때 나는 성경을 펼쳤다. 시편의 구절이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도 믿음은 나를 붙드는 손이 되었고, 책은 무너지는 마음을 곧게 세워 주는 지주가 되었다.
만약 그때 책이 곁에 없었다면, 나는 아마도 정신적으로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책은 절망의 벼랑 끝에서 내 마음을 붙들었고, 믿음은 그 책 속에 다시 호흡을 불어넣어 주었다.
나에게 독서는 아이들이 서울로 떠난 뒤, 공허한 집안에서 시작했던 ‘나를 위한 독서’와는 성격이 달랐다. 그때의 독서는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선택이었다면, 이번의 독서는 살아남기 위한 절박한 몸부림이었다. 책은 시간을 메우는 도구가 아니라, 생사의 경계에서조차 나를 붙드는 힘이었다.
죽음을 직면한 순간, 나는 삶이 얼마나 유한하고 연약한지 알게 되었다.
책은 그 두려움 속에서 나를 붙들었고, 믿음은 내일을 기다릴 용기를 주었다.
삶은 언제나 끝과 맞닿아 있지만, 그 끝이 있기에 매 순간은 더욱 선명하다.
죽음이 그림자를 드리워도, 책은 작은 등불이 되어 내 곁에 남았고, 믿음은 그 빛을 꺼지지 않게 지켜 주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당신에게 묻고 싶다.
어둠이 찾아왔을 때, 당신을 끝까지 붙들어 줄 등불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