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독서
나는 오랫동안 아이들을 위해 책을 읽었다. 생활기록부에 어떤 책을 남겨야 할지, 대학 면접에서 어떤 독서 경험을 말할 수 있을지, 늘 ‘아이들의 길’을 염두에 두며 책장을 넘겼다. 아이들과 함께 독후 활동을 하고 작은 책을 만들기도 했지만, 정작 내 마음은 언제나 뒷전이었다. 책은 늘 내 곁에 있었지만, 나를 위한 책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집을 떠난 뒤, 집 안에는 고요가 깃들었다. 저녁마다 오가던 대화의 소리가 사라지고, 식탁 위 빈자리가 더 크게 다가왔다. 공허와 허전함이 밀려오던 그 시간, 나는 다시 책장을 열었다.
이번에는 누군가의 성적을 위해서도, 기록부 한 줄을 위해서도 아닌, 오롯이 나를 위한 독서였다.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는 그 전환의 순간에 내 손에 들려 있던 책이었다. 평범한 대학 교수 스토너는 세상에 큰 흔적을 남기지 않았지만, 끝까지 자기 삶을 묵묵히 살아냈다. 화려하지 않은 그의 모습은 아이들이 떠난 빈자리를 지키던 내 모습과 겹쳐졌다.
세상에 대단한 성취를 남기지 않아도,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진짜 의미일 수 있다는 생각이 가슴을 울렸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삶의 무게와 가벼움의 교차를 보여주었다. 무거움은 짐처럼 느껴지지만 그 무게가 있기에 삶은 의미를 갖는다.
가벼움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금세 흩어진다. 책을 덮고 난 후, 나는 내 삶에도 무게와 가벼움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은 무겁고도 값진 사랑이었고, 지금의 고요한 시간은 가볍게 느껴지지만 그 안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아야 했다.
그때부터 나는 기록을 시작했다. 한 줄의 메모, 짧은 감상, 그리고 SNS에 올린 글들. 뜻밖에도 그 글들은 다른 이들에게 닿아 작은 공감을 불러왔다. 짧은 댓글 하나, 하트 하나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혼자라고 느끼던 시간 속에서, 책과 기록은 나와 세상을 잇는 다리가 되었다.
무엇보다 깨달은 것은 이것이었다.
나를 위한 독서는 자기 연민이 아니라, 자기 회복의 시작이라는 것. 책은 나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자,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등불이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책과 함께 나를 붙들어 준 또 다른 힘은 신앙이었다.
책이 내 마음의 근육을 단단히 세워주었다면, 기도는 흔들리는 마음을 붙드는 닻이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는 구절은 내가 혼자가 아님을 알려주는 약속처럼 다가왔다.
돌아보면 아이들을 위한 독서는 성장의 토대였다. 그러나 나를 위한 독서는 회복의 시작이었다. 책장은 내 마음의 숨구멍이 되었고, 기도는 내 영혼의 호흡이 되었다.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얻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과정이라는 것을.
책은 나를 일으켰고, 신앙은 나를 붙들었다. 그리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여전히 살아갈 이유를 얻는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마다 나는 다시 숨을 배웠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 듯, 문장은 내 마음을 흔들었고, 그 흔들림 속에서 나는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