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나를 깨우고, 고독이 나를 단련시키는 시간
새벽은 언제나 조용하다.
아직 어둠이 완전히 물러나지 않은 시간, 부엌의 불빛만이 작게 깜빡인다.
식구들의 아침 먹거리를 준비하고, 세탁기를 돌려놓은 뒤 헬스장으로 향한다.
아직 세상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나는 몸을 깨운다.
기계의 쇳소리가 울리고, 러닝머신 위에서 숨이 가빠질 때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이제는 억지로 의지를 다지지 않아도 된다.
몸이 알아서 나를 그곳으로 데려간다.
운동도 사람 관계처럼 밀당이 필요하다는 걸,
나는 이제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무리하지 않되, 멈추지도 않는 리듬.
그건 마치 내 삶의 리듬과도 닮아 있었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면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기다린다.
향이 퍼지는 그 순간, 세상이 조금 느리게 흐른다.
책 한 권을 펼쳐 들고 모닝 독서를 하거나, 기타를 꺼내어 소리를 맞춘다.
그 짧은 시간은 나를 위한 의식처럼 느껴진다.
하루의 분주함이 시작되기 전, 나 자신을 다독이는 가장 고요한 시간이다.
사실 이런 루틴이 내게 주어진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몸이 좋지 않아 한동안 일상을 멈추어야 했던 시기가 있었다.
남편은 지방으로 출장을 떠나 있었고, 나는 오랜 시간 혼자 집을 지켰다.
하루의 침묵이 길게 이어질수록 마음의 그림자도 짙어졌다.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으면 존재가 흐려지는 것 같았고, 세상과 단절된 듯한 고립감이 나를 흔들었다.
나는 원래 주변의 온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함께 웃고, 함께 나누고, 함께 움직이는 시간 속에서 내 존재의 의미를 찾곤 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 시간은 내가 너무 많은 사람의 온기에 의지하고 있었던 시절이었는지도 모른다.
몸이 멈추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나는 그제야 내 안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쁘게 살아왔을까.
사람들 속에서 얻으려 했던 건 정말 관계였을까,
아니면 존재의 확신이었을까.’
그 질문들이 조용히 스며들던 시절이었다.
그때 한 독서모임의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마음의 빈자리를 사람으로 채우려고 하지 마라.”
그 말이 이상하게 가슴 깊이 내려앉았다.
그동안 나는 외로움을 사람으로 덮으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말 이후로, 나는 조금씩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빈자리를 그대로 두기로 했다.
그곳에 바람이 스며들고, 햇살이 머물고, 나의 생각이 깃들게 두었다.
그렇게 마음의 빈틈을 살아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가자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이상 무겁지 않았다.
그건 고립이 아니라, 회복이었다.
외로움이 서서히 고독으로 바뀌는 순간,
나는 내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기분을 느꼈다.
‘데미안’의 문장 하나가 불현듯 떠올랐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나는 나의 알을 깨고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과 관계라는 껍질 속에서 안전하게 숨 쉬며 스스로를 잊고 살았던 그 세계를 이제는 조용히 벗겨내는 중이었다.
혼자 걷고, 혼자 읽고, 혼자 숨 쉬며, 나는 나만의 세계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 과정은 아프기도 했지만, 그 아픔조차 내 삶의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저녁이면 다시 수영을 하거나 걷는다.
물이 스치는 감각, 공기의 냄새, 조깅 도중 스치는 바람의 결들이 하루를 정리해 준다.
혼자라는 것이 이제는 두려움이 아니다.
그 시간은 나를 다시 중심으로 데려다 놓는 회복의 시간이다.
나는 더 이상 사람에게서 온기를 구하지 않는다.
대신 내 몸과 내 마음이 만들어내는 온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 온도는 외로움보다 따뜻하고, 관계보다 오래간다.
어쩌면 고독은 나를 다시 살아 있게 하는 또 다른 방식의 사랑일지도 모른다.
누구와도 나누지 못하는 이 침묵의 시간 속에서
나는 오히려 더 많은 대화를 나눈다
나 자신과, 어제의 나와,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나와...
물론 곁에 있는 소중한 이들과 대화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모든 것들의 대화 끝에 남는 것은 결핍이 아니라 충만이었다.
혼자라는 것은 더 이상 결함이 아니라, 나를 회복시키는 새로운 루틴이 되었다.
이제 나는 고독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간다.
그건 나를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나를 잃지 않게 하는 일이다.
새벽의 공기, 커피의 향, 수영장의 물결, 그리고 책의 한 문장이 내 안의 리듬을 완성시킨다.
그 리듬이 나를 지탱하고, 내일로 이어진다.
이제 나는 누군가의 온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내 안의 온도가 충분히 따뜻하다는 것을,
그 고요한 시간들이 매일 알려주고 있으니까.
"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살기 위해 서다. 나는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中_보후밀 흐라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