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나로 살아간다는 것

작은 하루가 나를 지켜주는 힘이 될 때

by 서수정


아침이면 제일 먼저 닭가슴살을 에어프라이에 굽는다.
식구들의 아침을 챙기기 위해 야채수프를 블랜딩 하고, 세탁기를 돌려놓은 뒤 조용히 운동복을 꺼내 입는다.
문을 나서면 아직 세상은 잠들어 있고, 공기에는 새벽의 냄새가 남아 있다.
그 차가운 공기를 마실 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맑아진다.
헬스장까지 걷는 길은 언제나 비슷하지만, 그 안엔 매번 다른 생각이 있다.
러닝머신 위에서 천천히 속도를 올리다 보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풀린다.
처음엔 힘들고 귀찮았던 운동이 이젠 내 하루의 질서를 세우는 시간이 되었다.
근육이 자라듯 마음도 단단해진다.
무게를 들어 올리는 동안 나는 내 마음의 무게도 함께 조정한다.
누군가의 시선이 아닌, 오직 나와의 약속으로 시작하는 하루 — 그건 나를 믿는 연습이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와 남편, 아들과 식사를 한다.

커피 향이 그리워지는 아침, 모닝독서를 위해 카페에 앉는 시간, 나는 마음의 속도를 늦춘다.
햇살이 창문을 넘어오고, 창 밖으로 들어온 빛이 커피잔 위를 부드럽게 감싸는 그 순간이 좋다.
책 한 권을 펼치고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제의 피로가 녹고, 오늘의 나를 다독이는 문장을 만난다.
책 속의 문장은 가끔 사람보다 더 따뜻하다.
“이제는 괜찮아.”
그런 말 한 줄이 나를 위로할 때가 있다.
나는 커피 한 모금과 문장 한 줄로 하루를 정리하고 다시 채운다.
그 시간은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내 마음의 리듬을 되찾는 조용한 의식이다.

혼자 밥을 먹는 일도 이제는 괜찮다.
식당의 소음 속에서도 내 자리를 지키며
음식의 온도를 천천히 느낀다.
예전에는 혼자라는 게 어색했다.
사람들 속에 있어야 내가 존재한다고 믿었고,
함께 웃지 않으면 공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혼자라는 시간도 충분히 따뜻할 수 있다는 걸.
누구의 말이 없어도, 그 자리에 내가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요즘은 취미로 기타를 치고, 작은 꽃을 사서 화병에 꽂는다.
향초를 켜고 저녁의 공기를 느끼면, 하루가 조금 더 부드럽게 마무리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을 돌보는 방법이다.

그런 시간들이 내 안의 자존감을 채워준다.
나는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나를 위해 이런 시간을 만들어줄 자격이 있다.”는 걸 조금씩 배웠다.
예전엔 자존감을 사람을 통해 채우려 했다.
칭찬이 들리면 하루가 빛났고, 작은 비난에도 금세 흔들렸다.
하지만 이제는 자존감은 타인의 말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에게 지키는 약속 속에서 자란다는 걸 알게 된 듯하다.

운동으로 몸을 깨우고, 커피로 마음을 데우고,
책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일 — 이 모든 건 나를 믿는 일상의 언어다.
이제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한다.
혼자 커피를 마시고, 혼자 걷고, 혼자 밥을 먹는 그 순간들이 내 삶을 가장 따뜻하게 만든다.

사람으로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지 않아도,
그 자리에 바람과 햇살, 향기와 생각이 머문다.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든다.
단단함이란 무너질 틈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무너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의 힘이다.
나는 아직도 흔들리지만,
예전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건 내가 나를 믿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자존감이란 결국,
‘오늘의 나를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마음’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도 이렇게 살아냈다는 사실이
스스로에게 주는 가장 큰 위로다.
나는 오늘도 나의 속도로,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책 한 권, 바람 한 줌, 그리고 나".
그 여정의 끝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혼자라는 건 외로움이 아니라 회복이고,
루틴은 나를 단단히 세우는 일상의 기도라는 것을 말이다.

커피 향이 방 안을 감싸고, 책 한 문장이 내 마음을 어루만질 때, 오늘도 나는 나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감사히 생각한다.
그 사실 하나면, 오늘은 충분히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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