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루미나이트

by 서수정

밤이 되면
나는 조금 느려진다.

사람들이 하루를 정리하느라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있을 때,

그 말들이 쉽게 흩어지지 않는 밤이라는 걸 느낀다.
말하지 못한 말,
삼켜버린 숨,
끝내 꺼내지 않은 이야기들.


그래서 나는
밤에는 말을 아끼는 편이다.

사람들은 종종 괜찮아지기 위해 밤을 건너려고 한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떠올리며
잠에 들거나,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나는 괜찮아지지 않은 채로
밤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더 자주 본다.

그들은 특별하지 않다.
아주 오랫동안 애써왔고,
오늘도 하루를 무사히 넘겼을 뿐이다.
눈에 띄는 성취도 없고, 설명할 만한 변화도 없지만
무너지지 않기 위해 어제와 비슷한 오늘을 반복해 온 사람들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 옆에 앉는다.

묻지 않고,
다독이지 않고,
앞으로 가야 한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이해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저 숨이 조금 가라앉을 때까지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이곳에 들어온다고 해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고,
마음이 갑자기 가벼워지지도 않는다.

다만 조금 더 애쓰지 않아도 되는 밤이 여기에는 있다.


이 밤에는 괜찮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잘 버텼다는 설명도 필요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다.


이 이야기는 사람들을 움직이기 위해 쓰이지 않았다.
용기를 내게 하거나, 결심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멈추어도 되는 시간을 잠시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이 밤을 적는다.


밤이 자주 오는 이유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루가 너무 자주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날들은 끝내 정리되지 않은 채
다시 아침을 맞는다.

나는 그런 밤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기로 했다.
말없이 남아 있던 시간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순간들을 기록해 두기로 했다.


루미 나이트는
애쓰며 살아온 사람들이 설명 없이 머물 수 있는 밤이다.
잠시 속도를 내려놓고, 아무 역할도 맡지 않아도 되는 자리다.

나는 오늘도 불을 켜지 않는다.
방향을 가리키지도 않는다.

그저, 밤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자리를 지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