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루미의 의자

몸이 먼저 자리를 찾는 밤

by 서수정

나는 이 의자를 사람들이 오기 전에 먼저 놓아두었다.
누군가를 앉히기 위해서라기보다, 앉지 않아도 된다는 걸 먼저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밤은 늘 비슷하게 찾아오지만 사람들이 밤에 도착하는 방식은 매번 다르다.
어떤 이는 서둘러 문을 닫고 들어오고,
어떤 이는 한참을 서성이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개를 숙인다.
그래서 나는 말보다 먼저 의자를 놓았다.

이 의자는 쉬겠다고 결심한 사람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
아직 앉아도 되는지 모르는 사람,
서 있는 게 익숙해져서 자기가 지쳐 있다는 사실을 늦게 알아차린 사람을 위한 자리다.
나는 그 의자 옆에 앉아 밤의 속도가 느려질 때까지 기다린다.
사람들은 대개 의자를 바로 보지 않는다.
방 안을 둘러보고, 불을 켜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고, 가방을 내려놓을지 말지 잠시 고민한다.
그 사이 숨이 먼저 바뀐다.
처음엔 짧고, 조금 날카롭다가 의자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숨이 아주 미세하게 길어진다.
나는 그 순간을 본다기보다 알아차린다.

의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사람의 몸은
의자 앞에서 자기 상태를 먼저 고백한다.
그날 밤,
의자 앞에 서 있던 사람도 그랬다.
그는 바로 앉지 않았다.
앉아도 되는지 확인받고 싶은 얼굴이었다.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다기보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지 알고 싶어 보였다.
나는 묻지 않았다.
왜 늦었는지,
왜 이렇게 조용해졌는지,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도.
그저 의자를 조금 안쪽으로 밀어두었다.
이 의자는 정면을 바라보지 않는다.
누군가를 마주 보게 하지도 않고,
대화를 시작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앉으면 자연스럽게 어딘가를 응시하게 된다.
특별한 풍경이 있는 것도 아닌데 시선은 그 자리에 오래 머문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오래 바라보는 걸 힘들어한다.

그는 한참을 서 있다가 조심스럽게 앉았다.
의자가 소리를 냈지만 그 소리는 밤에 묻혔다.
앉는다는 건 대단한 결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더 이상 서 있지 않아도 된다는 걸
몸이 먼저 선택하는 순간에 가깝다.
나는 그가 당장 쉬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아차렸다.
다시 일어날 수도 있고, 아무 말 없이 나갈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기다렸다.
의자에 앉은 사람은 곧바로 편해지지 않고
오히려 불편함이 먼저 올라온다.
그동안 참고 있던 감각들이 한꺼번에 제자리를 찾느라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그때가 가장 조용해야 하는 순간이다.


나는 그 소란을 정리해주지 않는다.
사람이 자기 속도를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의자는 그대로 두고, 밤도 그대로 둔다.
그는 숨을 한 번 고르고
두 번 고르고
세 번째 숨에서야 어깨를 내려놓았다.
나는 그제야 조금 뒤로 물러났다.

이 의자는 사람을 붙잡지 않는다.
위로하지도 않고, 머물러야 한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다만 여기 앉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몸으로 알게 해 준다.
그 밤,
그는 오래 앉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게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의 의자는 사람을 쉬게 하려고 있는 게 아니다.
쉬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를 잠시 제공하기 위해
여기에 있다.
나는 오늘도 의자를 같은 자리에 놓아둔다.
누가 올지 모르고, 아무도 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한 속도로 하루의 끝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놓아두었다.

사람을 기다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자리를 먼저 만들어두기 위해서다.

나는 오늘 밤도 의자 옆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숨이 바뀌는 순간을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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