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말 대신 몸이 먼저 아팠던 밤

아무 일 없다는 얼굴로 밤을 지나온 사람

by 서수정

그날 밤,
의자 앞에 선 사람은 늘 괜찮은 얼굴을 하고 있던 둘째 딸이었다.

그녀는 어디에 있든 조금 더 움직이는 쪽에 서 있었다.
누군가 놓친 일을 대신 챙기고, 말이 날카로워질 것 같으면 먼저 웃으며 넘겼다.

그렇게 하는 편이 익숙해져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두고 착하다고 했고,
믿음직하다고 했다.
그 말들은 틀리지 않았지만,
그녀의 하루를 다 말해주지는 못했다.

엄마는 늘 맏이를 걱정했다.
잘 지내는지,
힘든 일은 없는지.
그 마음이 나쁘지 않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굳이 자기 이야기를 보태지 않았다.

언니는 씩씩한 사람이었다.
자기 삶을 또렷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그녀에겐 늘 조금 멀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 자기 자리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려 애썼다.

회사에서도 그녀는 늘 같은 사람이었다.
팀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문제가 생기면 조용히 정리하는 팀장.

그렇게 하루하루를 넘기다 보니
몸이 먼저 반응했다.

어느 날부터 속이 조여 왔고,
이유를 찾기도 전에 몸이 신호를 보냈다.
그녀는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날 밤,
그녀는 루미의 의자 앞에 서 있었다.

앉기 전까지도 괜찮은 얼굴이었다.
오늘도 별일 없었다는 표정,
설명할 필요가 없는 얼굴.

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 의자에서는 묻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주 천천히 앉았다.
마음을 정해서가 아니라,
몸이 먼저 그 자리를 알아본 것처럼.

의자에 앉는 순간,
예전에 언니가 했던 말 하나가 이유 없이 떠올랐다.

'너는 항상 잘하잖아.'

그 말은 가슴보다 먼저 눈에 닿았다.
소금기 섞인 방울들이 잠시 차올랐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눈물이 흐르지도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머물게 두었다.

나는
그 순간이 설명으로 바뀌지 않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
그녀는 잘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처럼
그 자리에 있었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구하지 않았는데도,
더 애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먼저 와 있었다.

그 감각이 왜 그런지 굳이 묻지 않아도
괜찮아 보였다.

이 의자는 아픔을 고쳐주지 않는다.
대신 아픔이 조용히 머물 수 있는 시간을
내어준다.

그날 밤,
그녀는 오래 앉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그 밤은 그녀에게 충분했다.

말보다 몸이 먼저 아팠던 밤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가끔은 가장 필요하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힘들다고 말하는 건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를 더 늦게 아프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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