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의자 앞에 서 있던 밤

밤마다 남겨진 말(言)들

by 서수정


그날 밤, 나는 창가에 날개를 접은 채 머물러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하루를 마친 거리의 불빛이
낮게 번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하루는 저마다의 속도로 밤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 어깨가 조금 내려온 그림자 하나가
창 앞에서 멈췄다.
그 그림자는 그냥 지나가지 않고, 잠시
안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보였다.
불이 켜진 공간과 조용히 놓인 의자,
아무 말도 오가지 않는 그 자리를 확인하듯이.
곧 그 그림자는 한 걸음 물러났다가,
아주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서두르지 않았고, 결정한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오늘 하루가 조금 무거웠던 몸이 발걸음을 옮긴 것처럼...
그는 의자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말을 꺼내면 쉽게 자리를 뜨지 않았고,
이야기가 길어져도 고개를 끄덕이며 끝까지 들어주었다.
말을 끊지 않는다는 것, 그건 그가 오래 지켜온 태도였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말들이었고, 조금 지나면
마음속에 오래 두었던 이야기들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그는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숨기고 싶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꺼내놓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자기 안에는 아직 말이 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부분은 조급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가끔은 조금씩 이야기하기도 했다.
정말 그러고 싶을 때,
말이 자연스럽게 올라올 때만.
그 정도가 그에게는 편안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많아지는 날도 있었다.
관심 없는 이야기들이 섞여 들어오고,
굳이 품지 않아도 될 말들까지 한꺼번에 밀려올 때.
그는 그 이야기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말을 건네온 사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자리는 늘 열려 있었다.


이야기가 끝난 뒤, 그는 조금 피곤해졌다.
아픈 것은 아니었고, 마음이 무너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안쪽의 온기가 조금씩 쓰인 느낌이었다.


그는 의자 앞에 서서 잠시 그대로 있었다.
앉을 수도 있었지만, 그날은 그러지 않았다.
쉬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잠시 서 있는 쪽이 자기에게 더 맞는 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서 있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래 품을 수 있는 사람이었고,
동시에 자기 이야기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의자에 앉지 않고 잠시 서 있다가 그는 다시 걸어갔다.
그 선택은 차갑지도, 무겁지도 않았다.
그저 자기 온도를 다 쓰지 않기 위한 아주 조용한 선택이었다.


나는 그가 돌아서는 모습을 붙잡지 않았다.
의자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니까.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도 자기 마음을 따뜻하게 덮어둘 자리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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