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잃은 순간
오늘 밤도 루미는 누가 찾아올지 모른 채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날개를 접은 채, 밤이 충분히 가라앉을 때까지
그 자리에 머물며 창 밖을 보았다.
이슬이 내리던 어느 날,
머리를 풀어헤친 한 여성이 느닷없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지도 않은 채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마치 몸이 먼저 자리를 찾아온 것처럼...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한두 번 숨을 고르는 듯하더니 그제야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내가 여기에 와 있지?’
그런 표정이었다.
그녀는 의자에 앉은 채 중얼거렸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
아직 끝내지 못한 일들이 머릿속에서
서둘러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그녀의 가방 옆에는 다이어리가 놓여 있었다.
꺼내지 않아도 그 안이 얼마나 빼곡할지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오늘도 아이를 기차역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가슴이 조금 빠르게 뛰었고,
등 뒤가 딱딱하게 굳는 느낌이 들었다.
지나가던 길어 불빛이 새어 나오는 창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 놓인 의자를 본 순간,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무엇에 홀린 듯 이끌려 들어갔다.
계획해서 온 곳도, 쉬려고 정한 자리도 아니었는데 몸이 먼저 이곳을 기억해 낸 것처럼...
그리고 지금, 여기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의자에 앉은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그녀는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
'오늘 하루, 자신에게 속도를 늦춘 적이 있었을까.'
대답은 곧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 사실이 그녀를 조금 느리게 만들었다.
루미는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내려갔다.
그날 밤, 그녀는 아무 결심도 하지 않았고,
아무 계획도 새로 세우지 않았다.
그저 앉아 있었다.
한숨을 놓듯 입술 사이로 숨이 흘러나왔고 입가에 아주 옅은 미소가 스쳤다.
루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어떤 밤은 더 잘 살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충분한 나로 잠시 머물기 위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