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앞만 보며 달려온 마음

방향을 다시 만나는 시간

by 서수정


그는 터벅터벅, 마치 하루의 무게가 그대로 발걸음에 남아 있는 사람처럼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걸음에는 더 이상 속도가 실려 있지 않았고,
어깨는 앞으로 조금 기울어져 있었다.
오래도록 앞만 보며 달려온 사람에게서만 보이는,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지친 몸의 모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왔지만 그는 이곳을 둘러보지 않았다.
어디에 왔는지 확인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듯, 그저 자연스럽게 시선이 머무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 자리에 루미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말을 걸지도, 앉으라고 재촉하지도 않는 자리.
그저 그 자리에 놓여 있음으로 이미 충분히 말을 건네는 듯한 의자였다.
그는 잠시 그 앞에 멈춰 섰다가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몸을 맡겼다.
앉는 순간, 마음보다 먼저 몸이 반응했다.
굳게 올라가 있던 어깨에 힘이 풀리고,
손끝에 남아 있던 긴장이 서서히 내려앉았다.
마치 이제야 몸이 ‘여기서는 괜찮다’는 신호를 받은 것처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루미는 날개를 접은 채 조용히 머물러 있었다.
가까이 다가오지도, 멀리 물러서지도 않은 거리에서 그저 그 시간을 함께 견디듯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그동안의 시간을 떠올렸다.
잘 나가던 공장,
사람들로 가득하던 작업장,
숫자가 늘어나던 시절의 자신.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하나둘 정리해야 했던 자리들과 쉽게 꺼내지 못했던 말들.

열심히 살았다고 믿었다.
앞만 보고 달리면 언젠가는 삶이 그 노력에 응답해 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보니 삶은 어느새 너무 조용해져 있었고, 가족과의 거리는 가까워지기보다는 설명하기 어려운 벽이 되어 있었다.
잘될 때는 곁에 있던 사람들도 힘들어지자 하나둘 보이지 않았다.
그 사실이 그를 가장 아프게 했다.

루미의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 그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았다.
새로운 결심을 하지도, 다짐을 적어 내려가지도 않았다.
그저 삶의 중심이 언제부터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는지를 조용히 돌아보았을 뿐이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삶의 전부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가끔은 옆을 보고, 가끔은 뒤를 돌아보며 가는 길 역시 삶이 허락한 속도였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천천히 마음에 내려앉았다.
그 시간은 위로라기보다 숙고에 가까웠고,
쉼이라기보다는 자기 삶을 다시 만나는 순간에 가까웠다.

잠시 후,
그는 길게 한숨을 놓았다.
마치 오래 들고 있던 무언가를 이제야 내려놓은 사람처럼.
입가에는 아주 옅은 미소가 남아 있었다.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고, 내일도 여전히 쉽지 않겠지만 삶의 중심이 조금은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루미는 그가 그 자리에 앉아 자기 삶을 다시 바라보았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충분하다고 느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밤을 조용히 함께 지켜보았다.

"앞만 보고 달려온 삶은 멈추어 앉아볼 때에야
비로소 방향을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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