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조용했던 공간에 대한 애도

진주』를 공간 인문학적으로 읽다

by 서수정

『진주』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남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공기의 변화다.

키노가 살던 마을은 원래 소란한 곳이 아니었다.
바다는 늘 그 자리에 있었고, 사람들은 비슷한 하루를 반복하며 조용한 리듬 속에서 살아가던 공간이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비극이 시작된 이야기라기보다, 조용했던 공간이 침범당한 이야기처럼 읽힌다.



키노의 집은 작고 단출하다.
그러나 그 공간에는 가난과는 다른 종류의 안정감이 있었다.
서로의 숨소리를 알고, 밤이 오면 자연스럽게 어둠이 내려앉는 집.

그 집은 세상을 막아내는 요새라기보다
삶의 리듬을 보호하는 공간에 가까웠다.

하지만 진주가 발견된 이후, 가장 먼저 흔들린 것은 사람이 아니라 공간의 성격이었다.

의사는 문턱을 넘고,
도둑은 밤을 가르며 들어온다.
집은 여전히 집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더 이상 안쪽으로 물러날 수 없는 장소가 된다.

고요는 더 이상 이 공간을 보호해주지 못한다.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며
사라져 가는 시골 마을의 집들을 떠올렸다.
문은 열려 있지만 머무를 이유가 사라진 집들,
사람보다 먼저 고요가 떠난 공간들.


이야기는 점점

집 바깥으로 밀려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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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끝.


절벽은 흔히 극적인 선택의 장소로 해석된다.

그러나 『진주』의 절벽은 갑작스러운 결단의 무대라기보다 조용한 공간이 끝내 밀려난 자리에 가깝다.


앞에는 낙하가 있고, 뒤에는 추적이 있다.

이곳에서 인간은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하기보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사실을 몸으로 받아들인다.


절벽은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조용한 공간이 오랫동안 밀려난 끝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키노가 서 있던 절벽은 그의 욕망이 만들어낸 장소라기보다 지켜지지 못한 고요가

마침내 몰려간 끝자리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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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등장하는 바다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큰 소리를 품고 있으면서도 가장 조용한 공간이다.


바다는

소유를 요구하지 않고, 가격을 매기지 않으며,

침입하지 않는다.


그래서 키노와 후아나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처음으로 다시 고요 속에 서게 된다.


바다는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더 이상 고요를 침범하지도 않는다.


진주가 바다로 돌아가는 장면은

깨달음의 제스처라기보다 소음의 세계가 더 이상

이 고요를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마지막 경계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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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타인벡은

도시를 인간의 감정을 닮은 존재로 그렸다.

흥분하고, 증폭되고, 전염되는 감정의 덩어리로서의 도시.


그렇다면 키노가 살던 마을은 그와 반대편에 놓인 공간이었다.

감정이 증폭되기보다 가라앉아 있던 곳,

속도가 아니라 반복이 삶을 이루던 공간.


그래서 이 이야기는 더 아프다.

비극은 시끄러운 공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조용했던 공간이 더 이상 조용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진주』는

욕망의 이야기라기보다, 조용한 공간이 어떻게 밀려나고, 어디까지 물러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 소설은 읽고 나면 슬프지만,

그 슬픔은 분노가 아니라 애도에 가깝다.


지켜지지 못한 고요,

침범당한 공간,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어떤 삶의 리듬에 대한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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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가 오래 남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 역시

그 조용한 공간들을 하나씩 잃어가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공간은 어디쯤일까.


아직 집 안에 머물고 있는지,

이미 절벽 끝에 서 있는지,

아니면 고요를 되돌려 보낼 수 있는

바다 앞에 와 있는지...


우리에게도 아직 지켜지고 있는 조용한 공간이 남아있는지 문득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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