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이니까 괜찮다'는 말은 정말 괜찮은가?
밀란 쿤데라 <농담>
밀란 쿤데라의 <농담>은 말 그대로 한 마디 농담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루드비크는 친구에게 장난스러운 메시지를 보낸다. "낙관은 인류의 아편이다. 혁명을 배워라, 멍청이들!" 농담이었다. 하지만 이 장난스러운 문장이 당의 노선을 부정하는 심각한 문제로 해석되며, 그는 대학에서 쫓겨나고 군대로 끌려가면서 인생이 뒤틀린다.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나라퀴즈쇼'가 떠올랐다. 출연자들은 난감한 정치적 질문을 받으면 '정치는 잘 모른다'며 대답을 피했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나 특정 개인을 대상으로 한 불편한 농담이 던져지면, 출연자는 머뭇거리다가 결국 대답했다. 정치적 문제는 조심하면서, 타인을 조롱하는 농담은 훨씬 쉽게 받아들여지는 모습.
'농담'이라는 이름으로 던져진 질문들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했지만, 그 웃음이 누군가의 상처를 딛고 올라서는 것이라면 과연 괜찮을까? '농담이니까 괜찮다'는 말은 정말 괜찮은가? 우리는 '농담'이라는 말에 지나치게 너그러워지는지도 모른다. "이건 농담이잖아"라는 말은 때때로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변명이다. 농담은 본래 상대의 기분을 좋게 하거나 유쾌한 분위기를 만드는 도구여야 한다. 그러나 농담이 특정인을 희생시키거나 약자의 상처를 희화화할 때, 그것은 더이상 웃음을 유발하는 행위가 아니라 폭력에 가까운 무기가 된다.
루드비크의 농담이 심각한 결과를 불러온 건 그가 단순히 '농담을 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그 농담이 권력과 얽히며 루드비크를 옥죄었기 때문이다. 나락퀴즈쇼의 불편한 농담들 역시 '농담'이라는 명목 아래 '누구는 웃고, 누구는 상처받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웃음이라는 이름으로 넘겨짚는 말들, 아무렇지 않게 던져진 농담들이 얼마나 쉽게 사람을 상처 입히고, 나아가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가는지를 우리는 더 자주 돌아봐야 한다.
'농담인데 뭐 어때'라는 말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농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