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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가 된 사람들

위정자의 선택은 누가 감당하는가?

by 북수돌

정유정 <28> (25. 2. 12~2. 17)


정유정의 <28>을 읽으며 군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노수진의 쌍둥이 남동생이 군인이라는 설정이 있어서 그의 시점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는 끝내 등장하지 않았다. 소설 속 군인들은 오직 폭력을 행사하는 도구로만 묘사된다. 시민을 가두고, 위협하고, 총을 겨눈다. 하지만 정말 아무런 의심도 없이, 고민 없이 이 일을 수행했을까?


현실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다. 전염병이 돌면 살처분 공무원들이 동원된다. 우리는 ‘살처분’이라는 단어를 쉽게 소비하지만, 그 명령을 실행하는 사람들은 실존한다. 2019년 보도에 따르면, 한 공무원은 구제역 당시 갓 태어난 새끼 돼지들을 생석회가 뿌려진 구덩이에 던져 넣었다. 그 장면이 17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트라우마였다.


국가가 내놓은 해결책은 ‘외주화’였다. 살처분 공무원들의 정신적 피해가 문제로 떠오르자, 정부는 살처분 업무를 공무원이 아닌 민간 용역 업체에 넘겼다. 이제 가축을 살처분하는 건 정부 직원이 아니라, 더욱 불안한 노동 환경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국가가 공무원들의 트라우마를 해결하는 대신, 그 고통을 더 취약한 사람들에게 떠넘겼다.


소설 속 군인들도, 현실의 살처분 노동자들도 국가의 명령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그 일을 수행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만약 <28>에서 군인의 시점이 있었다면? 누군가는 시민에게 총을 겨누는 것을 주저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명령을 맹목적으로 따랐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의 갈등이 있었다면, 이야기는 훨씬 복합적이었을 것이다.


위정자는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를 감당하는 것은 그 아래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정작 국가가 그 선택의 결과를 감당해야 할 때, 그 무게는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로 흘러간다. 소설 속 군인들처럼, 현실의 살처분 노동자들처럼.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은 따로 있지만, 그 명령을 수행하며 정신적 고통을 감내하는 건 그들의 일이 된다.


아직도 이 구조가 정당한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는 너무 쉽게 어떤 사람들을 ‘도구’로 만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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