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서양민들레

by 북극성 문학일기

안녕하세요.

북극성 문학일기입니다. ✨


25년과 멋지게 작별하고, 26년에 잘 도착하셨나요?

오늘은 봄과 서양민들레를 주제로 편지를 보냅니다.

채영이 직접 쓰고 그린 생태일지를 보고 제가 짧은 소설을 써서 같이 보내는데요.

우선 이번 주인공인 서양민들레를 소개할게요. 25년도 4월, 어느 봄에 채영은 연희동 갤러리에서 민들레를 보았습니다. 생태일지 소감에 정말 우악스럽게 생겼다고 적어두었는데요.

채영의 그림으로 보니 줄기가 여러 방향으로 뻗어 있고, 꽃도 잘 피우고 건강해 보여요.

우악스럽지 않으면 꽃을 피우고 살기 어려울 텐데, 자기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시선을 둘 수밖에 없는 생동감이 그림에서 느껴졌습니다.

생태일지를 보며 이 민들레처럼 거친 환경에서 살아가는 작은 존재를 주인공으로 한 글을 써보고 싶어졌어요.


봄 편지를 보내며, 다음 주에는 또 다른 작은 존재로 만나요!

북극성 문학일기 드림.



채영의 생태일지 - 봄과 서양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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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의 소설

들레와 쪼꼬


따듯하다. 해가 완전히 저 너머로 넘어가기 전, 세상이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까만 내 피부에도 노을이 잠깐 머문다.


“쪼꼬야. 이리 와.”


갤러리 입구를 서성거리는 나를 발견하곤 소라가 문밖으로 나왔다. 소라는 흥미로운 인간. 우리처럼 자기 털을 소중하게 가꾼다. 인간들은 털이 온몸에 나 있지 않고 유독 머리에 많다. 그간 내가 봐 온 소라는 털의 변화를 사랑하는 인간이다. 매번 털의 색을 휙휙 바꾸는데 그럴 때마다 자길 다른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한다.


어느 겨울, 소라의 이름은 클레멘타인이었다. 계단에 소복하게 쌓인 눈을 막대기로 쓸면서, 클레멘타인은 파란 털을 우리에게 자랑했다. 클레멘타인은 미소, 캐롤, 아멜리에 등 이름을 계속 바꿨는데, 오늘은 다시 까만 털 소라다.


나는 소라에게 다가갔다. 소라는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물그릇을 놓아주었고, 생선을 잘게 다져놓은 먹을 것도 주었다. 그리고 나의 털을 손등으로 살짝 쓰다듬어주었다.


“널 애타게 찾았어. 오랜만에 여길 와 주었네.”


그릇에 담긴 물을 홀짝이면서 마시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근처에 민들레가 있었다. 이 갤러리 주변을 서성거린 지도 2년이 넘었고 이 주변엔 인간들이 잘 가꾼 꽃들도 많았다. 그러나 내가 이름을 알고 있는 꽃은 민들레가 유일했다. 나와 같이 이 갤러리를 서성거리던 녀석의 이름이 들레였기 때문이다.


“쪼꼬. 들레가 생각나서 그래?”


내가 민들레를 보고 멈칫하자 소라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대답 대신 발을 들어 눈을 비볐다.


‘소라, 나는 늘 들레와 같이 있는 것 같아. 하루도 들레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어.’


기지개를 켜고 햇빛을 느꼈다. 소라는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고 했다.

겨울, 봄, 여름, 가을.


왜 인간들은 자연의 변화를 네 가지로 구분할까? 큰 의미 없는데. 나에겐 그것보단 오늘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너무 더운지, 너무 추운지, 먹이가 있는지, 먹이가 없는지가 더 중요하다. 우리는 어차피 다 하루살이라고. 골목 생활을 오래 한 양갱은 말했다. 그날 양갱이 동네에 나이 든 인간에게 얻어온 열빙어를 우리에게 나눠주면서 일장 연설을 했기에 듣는 척을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하품을 참지 않았을 것이다.


그거 모르는 고양이가 세상에 어딨어? 나는 거리에서 태어나면서부터 그걸 알았고 주인과 같이 살다가 버림받은 들레도 그 사실은 또렷하게 알고 있는 듯했다.


우린 너무 추운 날엔 함께 따듯한 열기가 남은 차 아래로 들어갔고, 너무 더운 날이면 그늘을 찾아 헤맸다. 인간들이 먹다 버린 음식물 쓰레기를 뒤적거리며 먹을 것을 구했다. 그마저도 없는 날엔 들레는 아주 열심히 인간에게 다가가 애교를 부렸다. 저리 가라며 발을 굴러 큰 소리를 내거나 우릴 귀찮아하는 인간도 많았지만, 들레는 개의치 않고 열심히 구애했다.


“저기 인간. 안녕? 나는 들레야. 우린 먹을 것이 필요해. 네가 먹을 것을 준다면, 나는 너에게 따듯한 시간을 줄게. 네가 오늘 고된 하루를 보냈다는 거 알아. 나와 함께 잠깐이라도 이 골목에서 시간을 보내면, 넌 분명 오늘의 피로를 잠깐이나마 잊을 수 있을 거야. 나의 이전 주인도 나와 있으면 마음이 따듯해진다고 했어.”


물론 들레의 말이 인간의 귀엔 니야옹- 하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열심히 눈을 마주 보면 대개 소통은 다 되는 법이다. 그렇게 들레는 친해진 인간들이 몇몇 생겨났고, 우린 어떤 날엔 꽃집, 어떤 날엔 파란 대문 앞, 때론 조금 더 멀리 위치한 고소한 향이 풍기는 카레 집도 방문했다.


아주 어린 인간에게 털을 내어주기도 했고, 지친 인간에게 야옹야옹 노래도 불러주고, 삶이 숨 가쁘게 돌아가서 바쁜 인간에겐 아무 말도 안 하고 지그시 눈을 바라보며 공백의 시간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런 들레 옆에서 나는 그간 도망만 다니던 삶의 방식을 조금 바꾸어, 인간과 살아가는 골목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이곳 갤러리 주변까지 떠밀려 온 나의 굴곡진 삶도 들레를 만나면서 달라졌다.


갤러리에서 날 반겨준 소라 역시 들레 덕분에 알게 된 인간이었다. 소라는 우리에게 각각 쪼꼬와 들레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소라가 머리털의 색깔을 바꾸면서 자신의 이름을 바꾸는 것처럼 우리 역시 이 사람, 저 사람이 불러준 이름이 다 달랐다.


나는 검은 고양이. 빵집, 턱 부분에 꼬불꼬불한 털을 기르는 남자 인간은 나를 네로라고 불렀고, 초록 대문 꼬마 인간은 ‘별’이라고 불렀다. 꼬마 인간은 밤하늘에 가득 수놓은 별을 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꼬마 인간이 사는 곳은 밤에도 너무 환하고 정신없어서 별이 보이질 않는데, 차 아래에서 낮게 웅크리고 있는 나를 볼 때 꼭 별 같다고 말했다. 나의 눈이 반짝거린다면서.


소라는 빠삐코라는 간식을 좋아한다. 인간들은 우리에게 종종 츄르라는 간식을 주는데, 소라는 빠삐코를 츄르를 먹는 우리처럼 쪽쪽 빨아 먹는다. 빠삐코 색깔은 내 털 색보다는 아주 밝았지만, 그것과 내 털 색이 닮았다며 쪼꼬라고 붙여줬다.


들레는 치즈 고양이다. 인간들은 노란색, 주황색 털을 가진 고양이들을 치즈 고양이라고 부르는데, 길가에 핀 민들레처럼 들레의 털 색은 연한 노란색에 가깝다. 우리는 털 색깔을 소라처럼 자유롭게 바꿀 수 없으니 2년 내내 소라에게 쪼꼬와 들레로 불렸고, 우린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소라가 우리 이름을 불러줄 때 그 목소리가 좋았다.


“쪼꼬야. 이제 어디 가지 말고 누나랑 같이 살까?”


그릇에 담긴 물을 거의 다 마셨고 슬슬 소라에게 인사를 건네고 떠나려던 차에 소라가 다시 말을 걸었다.


“나는 이제 떨어지는 벚꽃만 봐도 무서워. 쪼꼬가 거릴 헤매다가 다칠까 봐.”


갤러리 근처를 온 것도 오랜만이었다. 나도 이곳에 오기가 망설여졌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기 전에 나에게 이름을 붙여준 모든 인간과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기에 용기를 내서 여기까지 왔다.


“들레에게도 소라 너처럼 주인이 되어준다고 했던 인간이 있었어. 그리고 다시 버림받았잖아. ”


나는 소라의 눈을 또렷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알아, 쪼꼬야. 나는 들레를 버린 인간과 같은 행동을 하지 않을 거야. 너를 다시 만나면 너에게 이렇게 말하기 위해 많은 것을 준비했어. 내가 돈이 많진 않아서, 너와 함께 살면 나는 이제 클레멘타인도, 미소도, 캐롤, 아멜리에도 될 순 없지만 소라로 불리면서 같이 있고 싶어”


소라의 말에 나는 주저했다. 들레가 사람들에게 또다시 버림받고 난 후, 들레는 나와 함께 골목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에너지를 주고받던 활달한 치즈 고양이가 더는 아니었다. 들레의 애교와 붙임성을 보고 좋아하던 골목의 어느 인간은 즉흥적으로 들레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지만, 한 달도 채 안 지나 다시 들레를 거리로 내몰았다.


다시 거리로 돌아온 들레는 마음과 몸 모두 공허해진 듯했다. 몸에 군데군데 난 그을린 상처마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들레가 그 인간에게 갔을 때 붙잡아야 했나. 나는 씩씩한 척하며 들레와 인사했지만, 들레가 고생할 것을 알았다면 절대 보내지 않았을 거다.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들레는 지난겨울, 무기력하게 거리를 떠돌다가 이 근처에서 차에 치여 땅으로 돌아갔다. 그 시기쯤엔 나에게 곁을 내어주지도 않았고, 보이는 모든 인간을 피해 다니기에 바빴다. 인간들은 들레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태어나 무지개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들레가 땅으로 돌아가, 들레를 닮은 민들레를 이루는 땅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할 뿐이다.


민들레는 뿌리가 아주 깊고, 땅속 깊게 들어간다고, 세밀화를 그리며 갤러리에서 일하는 소라가 말해주었다. 갤러리 입구 쪽 화단에 가득 핀 꽃들은 다 직접 모종을 사서 심지만, 입구에 삐죽 솟은 민들레는 누구도 직접 심지 않았는데 저절로 태어나는 꽃이라고 한다. 억척스러우면서도 우악스러운 존재인데 그래서 정이 간다고 소라는 말했다.


소라는 정이 많은 인간이다. 나는 그걸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게 소라가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보장을 해주진 않는다. 내가 소라를 믿어도 될까?


“너에게 약속할게. 들레는 떠났지만, 들레에게 주지 못한 사랑의 몫까지 전부 너에게 주고 싶어. 내가 너의 곁에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해 줄래?”


멈칫하는 나의 몸짓을 천천히 살피며 소라가 다시 말했다. 다시 소라의 눈을 지긋이 바라봤다. 오늘 나는 나의 묘생에서 큰 결정을 해본다. 인간을 한번 믿어보겠다고.


나는 어두운 밤을 밝히는 별이자 검은 고양이 네로, 들레의 곁에서 그와 마음을 주고받으며 동네를 누비던 하루살이, 어떤 이에겐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죄다 뜯어놓는 천덕꾸러기, 밤마다 이상한 소리를 내는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 그리고 소라에겐 그냥 쪼꼬.


갤러리로 오는 길에 바람이 솔솔 불자 골목 곳곳으로 떨어지는 분홍 꽃잎을 보았다. 그걸 벚꽃이라고 하는구나.


소라는 천둥번개, 갑자기 하천 주변에서 출몰한 너구리, 온갖 발길질과 고함. 굶주림. 눈과 비, 더움과 추움을 이기며 살아온 내 삶을 알지 못한다. 까만 털에 붙으면 성가시기만 할 뿐인 이 벚꽃잎. 이 벚꽃잎이 떨어지는 것만 봐도 내 걱정이 된다는 소라의 말에 빙긋 웃음만 난다. 그런 소라와 함께 살면 나도 아주 작은 것만 걱정하며 살 수 있을까?


들레는 나에게 뭐라고 말해줬을까. 궁금하지만 알 순 없다. 민들레처럼 누구도 원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태어난 존재. 나는 그런 존재였다. 들레가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나 잘못은 인간이 하는걸. 분명 들레는 상처받더라도 믿어보라고 했을 거다.


“우린 씩씩하게 살아가야 해. 태어난 모든 존재는 다 그렇게 살아가잖아.”


나는 골목 후미진 틈 사이로만 다니던 나에게 다가와 다정히 말을 건넨 들레를 기억한다. 나도 한번 믿어볼게. 들레야.


어깨를 움츠리고 잔뜩 긴장해 있는 소라에게 다가간다. 그의 다리에 내 머리를 부빈다. 나는 너를 한번 믿어보고 싶어. 곧이어 소라의 얇은 손이 나의 귀를 다정히 덮으며, 토닥거린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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