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홀(dance hole)에 빠지다.

우주에 블랙홀이 있다면 나의 우주에는 댄스홀이 있다.

by 녹차파우더

건강이 바닥을 칠 때쯤 되면 사람은 살기 위한 자기 방어인지, 운동을 시작한다고 한다. 나도 그랬다.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산소가 내게는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졌고, 삶과 연결되어 있던 실들이 점점 내게서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주인이 버린 듯 구석에 놓인 마리오네트가 내 처지와 비슷해 보였다.


초등학교 단거리 이후에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걷기 운동뿐이었던 내가 흥미를 느낀 건 춤이었다. 이러쿵저러쿵해서 시작한 춤은 게임 속의 게임, 즉 삶의 퍼즐판 한 부분을 다시 잘게 잘라내어 하나씩 맞춰나가는 기분이었다.


배울 당시에는 춤에 대해 그렇게 욕심이 나지 않았고, 그저 건강을 위한다는 이유였다. 이쯤 되면 춤춘다고 이야기해도 되겠지?라는 건방진 마음으로 뭐라도 되는 거 마냥 겉멋을 뽐내고 다녔다. 주위 사람들과 비교하게 되고 연습도 하지 않으면서 '난 왜 이렇게 안될까?'라는 짜증만 내고, 주위 사람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나를 이겨내지 못하고 적당한 결과물을 내지 못하자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다.


다 버리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항상 미련이란 단어가 내 발목과 손목에 채워져 있었다. 실에 매달려 있는 마리오네트는 모래주머니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유튜브에 한 선생님의 영상을 보고 바로 수업 등록을 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자, 왜 내가 춤을 춰야 하는지, 왜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다시 춤을 배우면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바로 행동으로 옮겨졌다.


안무 위주로 배웠던 나에게 기본기란 이미 형태가 굳어진 찰흙을 다시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바운스와 웨이브 등을 관절 하나하나까지 느끼면서 추는 게 쉽지 않았다. 어색한 동작을 바르게 고친다는 건 잘못 든 버릇을 고치는 거만큼 재미없고 지루하고 괴로운 시간이었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 1번과 2번의 과정을 한 번씩만 듣고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마자 바로 든 생각은 다시 춤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저 안무반으로 바꿨을 뿐인데 배웠던 기본기가 아닌 예전의 겉멋이 든 내가 그 자리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내가 더 잘 춰 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그걸 알아차린 순간,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갈까 봐 무서웠고 춤에 대한 마음이 그대로란 생각에 마리오네트는 실이 아닌 모래주머니 무게 때문에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다행히도 선생님은 그런 나를 계속 다독여주셨고, 솔직한 평과 안내자로 항상 붙잡혀 있던 실을 스스로 끊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더 이상 모래주머니는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내가 왜 춤을 배우고 싶었는지 알게 되었다. 내성적인 내가 에너지를 얻고 분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춤이었다. 집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인풋의 과정만 있을 뿐, 아웃풋이라고는 필사뿐이었다. 하지만 춤은 인풋과 아웃풋을 동시에 할 수 있다. 기본기와 동작을 반복하고 노래에 맞춰 사람들과 안무를 춘다. 이후에도 혼자만의 연습이 필요하고 매우 중요하지만, 길지 않은 시간에 '잘 끝냈다'라는 성취감은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내가 먼저 자리를 양보하고 타인의 동작에 집중하며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당연한 그 시간과 공간이 나에게 또 다른 안정감을 준다. 앞에 나서길 두려워하고 사람들과 눈도 못 마주치는 자신도 오로지 그 시간만큼은 다른 내가 된다. 내가 춤을 잘 추지 못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잘 추고 싶은 의욕이 샘솟는다.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춤을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인다.


댄서가 꿈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내 신체능력이 최대한 뽐낼 수 있는 안무가 어디까지일지 궁금할 뿐이다. 나는 실에 매달린 인형이 아니라 실을 이용해 안무를 출 수 있는 마리오네트가 되고 싶다. 퍼즐판이 맞춰지지 않아 던져버려 조각들이 어디에 숨었는지 모를지라도 앞으로 하나씩 찾아갈 것이다.


선생님이 물었다. "갑자기 춤에 관심이 많아졌네요."

맞아요. 몸치, 박치라도 계속해보고 싶어 졌어요.

맞아요. 이제야 제대로 춤에 대해 궁금해졌어요.


나는 춤이 사랑받고 자유롭게 배울 수 있는 이 시대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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