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궁리

워킹맘다이어리

by 최서영



오늘은 내 생일이다. 그런데 남편이 야근을 한다고 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야근을 한다고 한다. 치과니 한의원이니 안경점이니 내 생일을 어찌알고 축하문자를 보내는데 회사는 우리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내 남편을 안 놔준다. 덕분에 아이 목욕 시키고 밥 먹이며 생일 저녁을 보내고 있다.


카톡이 왔다.


"언니 생일이에요?"

"네, 생일이에요. 근데 남편 야근한다네요. 우리집에 올래요?"


같은 단지에 사는 애기엄마를 덥썩 우리집에 초대 했다. <오늘 생일> 티셔츠 입은 사람의 부탁을 거절 할 수 없었던 애기엄마는 우리집에 왔다. 여러 핑계로 관계에 소홀했던 나는 같은 단지 엄마들의 근황을 축약버전으로 들었다. 다들 3년 안으로 이사를 갈 계획이었다. 신혼희망타운, 국민임대, 창업, 이직, 주식. 형태는 다르더라도 각자 살 궁리를 하며 지내고 있었다. 분명 나도 카톡 채팅방에 함께 있는데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아 모르고 있던 소식들이었다. 나는 너무도 놀랐다. 다들 살 궁리를 어찌나 야무지게 잘 하며 살던지. 그 궁리의 설계가 개미집 단면을 관찰하는것처럼 경이로웠다. 애기엄마는 애기를 안고 애기를 재우러 집으로 갔다.


맥주 몇 잔에 금방 취했다. 남편은 야근을 하려 했지만 오늘 생일인 아내를 위해 내일 더 야근하기로 하고 포장한 김피탕을 들고 퇴근했다. 남편이 김피탕 첫 술을 뜨기도 전부터 엉덩이를 들썩이며 여보, 다 살 궁리를 하며 살더라고 우리도 그래야하지 않겠냐고 설교를 했다. 그 때 남편 표정이 너무 웃겼는데. 지금 생각해도 웃겨서 또 웃음이 나온다. 나의 위태로움이 또 그를 노하게 했다. 나는 이미 남편의 표정만 보고도 남편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 알아차리곤 혼자 깨달아서 안 물어본 질문에 혼자 대답을 했다.


내가 지금 매일 하고 있는 게 살 궁리잖아.


내가 좇고 있는 것. 그것이 내가 하는 살 궁리다. 어떤 사람은 돈, 어떤 사람은 인맥. 그 마저의 좇는 것들도 부지불식간에 달라지기도 한다. 남들 사는 이야기를 들으니 나는 또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런데 조급해질 필요가 전혀 없다. 좇던 것을 모두 내려놓고 제주도로 떠나 시작하는 사람. 작업실에 쫓겨날 위기 속에서도 책이라는 것을 놓지 않는 사람. 매일 동생과 호수공원을 산책하며 자신의 근성을 지켜내는 사람. 평일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주말에는 자신의 음원을 녹음하러 가는 사람. 도심 속에서 양봉을 취미로 하는 사람. 회사 다니면서 사이드로 책이나 영화나 웹툰을 만드는 사람. 전업주부인데 아이와 함께 한 달 살기를 하러 가는 사람. 내가 동경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 같이 돈도 아니고 인맥도 아닌 어떤 것을 좇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내 맞은 편에 있는 것이 좋다. 맞은 편에서 그런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고 내 삶을 상상하는 것이 좋다. 나는 무엇을 해낼까 고민한다. 그것이 나의 살 궁리다.


<죽으려고 살기를 그만두었다> 신간 책을 구매했다. 어마무시한 책 제목을 보고 남편이 깜짝 놀랐나보다. 지난주에 생전 피워보지도 않던 담배를 피지를 않나. 와인 한병을 원샷하지를 않나. 화룡점정으로 남편에게 와인 한병 원샷하고 지난주에 보낸 장문의 카톡까지. 남편은 내가 큰일 나는줄 알고 <죽으려고 살기를 그만두었다> 책 이야기부터 꺼낸다. 읽어볼 생각도 안 하고 표지만 보고 대뜸 나를 혼내킨다. 오늘 생일인 사람에게.


이를 어쩐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여보, 내가 저 책을 왜 샀냐면, 이라고 운을 떼다가 벌써 입이 아프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가족 에세이 책을 준비 중인 나는 내 책을 접한 어떤 독자가 내 책으로 인해 상처를 받을까봐서, <죽으려고 살기를 그만두었다>는 원가족과의 단절을 한 여성이 쓴 책이니 읽고 내 책 고칠 생각으로 구매한 것이다. 어휴, 내가 말을 해놓고도 장황하다.


이런 책을 보면 이 책이 좋고, 저런 책을 보면 저 책이 좋다. 이 책이 좋아서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저 책이 좋아서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그런데 사람들 눈에는 그런 내 모습이 불안해보이는 모양이다. 정작 나는 괜찮은데. 이게 다 나의 살 궁리하고 말하면 역시 오바려나.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나라는 사람은 사람들의 말에 너무 쉽게 수긍해버리고 너무 쉽게 인정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나라는 사람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니까 내게 필요한건 줏대인걸까. 근성인걸까. 아집을 부리기는 또 싫은데. 이런 물렁함이 내 줏대라고 말해버리면 안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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