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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Apr 24. 2021

숨 쉬듯, 밥 먹듯, 햇볕 들이듯

김영옥 외 3명 저,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봄날의책,2020)

할머니가 요강을 밟고 미끄러진 날, 우리 가족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할머니는 요강을 밟고 넘어져 뼈가 부러졌고 수술이 필요한 상태였지만 감기에 걸린 상태라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상태가 이어지면 천식이 될 수도 있으니 산소 호흡기를 떼지 말라고 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그 이후에 어떤 일들이 우리 가족에게 펼쳐질지 그 때는 가늠조차 하지 못 했다. 할머니는 일주일을 부러진 뼈로 기침을 했다. 의료진에게 진통제를 맞아도 아프다 이야기해도 기다리라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겨우 수술을 한 후에는 뼈가 붙었어도 여전히 반신불구나 다름없는 몸이 되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차라리 죽여 달라고, 천장에 쥐가 있다고, 약을 먹어도 아프다고 다양한 이유로 아팠다. 잠이 들 수도, 깨어있을 수도 없던 할머니와 나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새벽 세 시의 몸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새벽 세 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는 시간이다. 아픈 몸들, 돌보는 몸들에게는 직면의 시간이다. 이 책은 세상 모르고 자는 이들에게 새벽 세 시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그리고 언제든 그 시간과 몸은 세상 모르고 잠든 우리에게도 찾아올 수 있음을 예견하는 책이다.


할머니는 미쳐가고 있었다. 나중 되어서는 가족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 했다. 아빠는 포기 하는 마음으로 집에 할머니를 모셔왔다. 그 사이 할머니는 여러 번 중환자실에 갔다. 할머니가 먹은 게 없으니 배변이 나오지 않아 관장을 하다가 탈진을 하고 중환자실에 가기를 여러 번. 그 와중에도 가족들은 자신의 삶을 반쯤 내어놓고 할머니를 돌봤다.     


손녀딸인 나도 주말마다 할머니가 있는 왕복 여섯 시간이 걸리는 속초로 향했다. 할머니를 변기에 앉히고 목욕을 해드리고 관장약을 넣어드리고 할머니 옆에 누워 말동무가 되어드렸다. 신기한 것은 모든 걸 포기하고 돌아온 집인데, 집에 있는 할머니는 점차 호전됐다는 것이다. 보조기구에 의존하긴 했지만 할머니는 누워만 있던 몸을 일으켰고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도 할머니는 여전히 집에서 자식의 돌봄을 받으며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그 사이 손녀들이 장성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아이들이 내려올 때마다 할머니는 노인수당으로 받은 돈을 아이들에게 주신다. 더 자주 내려오라고 일부러 치매가 심해진 척 장난을 치기도 하면서.     


이시가키 섬에 갔을 때 현지의 헬퍼에게 "이 주변에 배회 노인은 없다. 산책하는 노인이 있을 뿐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시가키 섬의 주민은 노인이 산책하는 모습을 주위에서 따뜻하게 지켜보는 것만으로 배회하는 노인을 없앴다.(73쪽)     


‘어쩔 수 없이’가 아니라 원해서 ‘기꺼이’ 하는 돌봄이 존재하며, 더 많은 돌봄이 기꺼운 것이 될 수 있다. 돌보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가치, 보람, 기쁨, 변화, 충만함은 승인되어야 한다. 누구를 돌보든, 돌봄에 대한 분명한 사회적 인정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공정함의 감각, 이것이 시민인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감각이 만들어지고, 나아가 사회정책에 까지 반영 될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가 공정하다라는 감각, 기꺼이 라는 감각 말이다. (76~77쪽)     


이 책은 돌보는 이, 돌봄 받는 이를 둘러싼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돌봄'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막연히 어두운 이야기일 거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 책이 호소하는 공통적인 목소리는 바로 그러한 시각부터 거둬달라는 것이었다.


이 책을 읽어내려가며 스쳐지나갔던 내 작은 경험치. 그 경험치를 상기하는 일만으로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돌봄을 기꺼이 해내는 경험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 말이다. 아픈 할머니와 이불 위에서 수다로 떠나는 과거로의 여행, 변기 위에 앉아 할머니 몸을 씻길 때에도 할머니 발에서 나오는 각질을 미는 것이 사실 즐거웠다. 할머니는 나의 별 것 없는 개그에도 자지러지게 웃었다. 할머니의 웃는 모습이 할머니를 보고 돌아온 일상 속에서도 문득 생각나 자주 웃었다.


물론 슬픔이 기쁨보다 크던 때가 더 많았다. 그러나 슬픔의 순간에도 가치, 보람, 변화, 충만함 같은 것들이 종종 목격됐다. 고생했다는 말 한 마디와 함께 툭 등을 치던 아빠의 토닥임에 왈칵 쏟아져 나왔던 울음. 그 울음의 의미는 슬픔이 아닌 벅차오름이었다. 우리가 함께 있기에 나눌 수 있다는 기쁨. 돌보고 돌봄 받던 시절이 있기에 나도 기꺼이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돌봄을 통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출발점은 타인과 시민으로서 관계 맺는 것이다. 시민됨은 여의도나 광화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 관계 안에서, 병실과 침실에서도 실천 될 수 있다.(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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