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배

_ 동생

by 최서영

※ 본 에세이는 언니와 동생, 시인 엄마, 극작가 아빠 4인의 릴레이 에세이입니다.


엄마의 배에는 20대 때부터 시작된 무수한 기록들이 남겨져 있다. 20대 중반, 언니와 나를 제왕절개로 낳으면서 남겨진 기록, 신장 수술로 새겨진 몇 번의 기록들. 세월이 지나 옅어진 흔적들도 있지만 엄마의 작고 여린 몸에는 여전히 기록이 남아있다.


내가 엄마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감정들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엄마’라고 하면 뭉클하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엄마가 나의 보호자라기 보다는 롤모델에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언니는 항상 바빴던 엄마가 미울 때도 있다고 했지만, 난 따라가고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대학시절에 집을 떠나면서도 엄마는 ‘보고 싶은 대상’ 보다는 ‘되고 싶은 존재’에 가까웠다.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엄마를 따라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다. 남들 앞에서 말 하는 게 끔찍이도 싫다는 걸 깨달으면서 고3 때 진로를 바꿨지만.


어릴 적 나는 할머니를 가장 의존했고,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물으면 할머니가 좋다고 답하는 아이였다. 교직 생활, 사회 생활로 바빴던 엄마는 주로 훈육 담당이었다. 주말마다 교회가 끝나면 도서관에 우릴 데려가, 온 가족의 대여권을 이용해 10권이 넘는 책을 잔뜩 빌려와 읽곤 했다. 그 외에는 잘못 했을 때 야무지게 등을 맞았던 기억들이다. 엄마는 ‘내 편이자 보호자’라는 생각보다는 ‘말하는 대로 따라야 하는 존재’에 가까웠다. 가끔은 혼날까 무서운 존재이기도 했다. 교사였던 엄마는 나에게도 교사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엄마가 신장이식 수술을 받게 되었을 때 엄마의 간호는 내가 맡아 하겠다고 했다. 언니는 처음 엄마가 수술을 했을 때 가지 못 한 죄책감 때문이라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약해진 모습의 엄마가 다시 예전처럼 돌아오길 바래서였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 역시 회복되면 다시 교직으로 돌아갈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특히 엄마가 교장직을 달게 된 지 얼마 안 되었던 때라, 엄마가 교직생활의 종착지에 완주하길 바랬다. 엄마에 대한 죄책감 보다는, 엄마의 삶에 나를 투영한 것에 가깝다. 엄마가 성공적인 은퇴를 하는 것이 곧 나의 성공적인 미래로 연결되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엄마의 간호는 크게 힘들지 않았지만, 엄마의 배에 굵게 새겨진 상처를 보는 일은 힘들었다. 엄마 배에 입이라도 달린 것처럼 끔찍하게만 보였다. 하지만 사실 그 상처는 신장을 이식해 준 이모의 숭고한 마음, 그리고 앞으로 엄마가 건강하게 복귀할 수 있다는 믿음이 담겨있었다. 엄마의 상처는 더 이상 아픈 것이 아니었다.


엄마의 수술 후, 엄마는 병원을 자주 가야 했기에 나의 신혼집에서 한 달 정도 함께 지내게 되었다. 장모님과 지내야 하는 남편에게 미안한 일이었지만 무던한 성격의 남편은 불편한 티를 한 번도 내지 않았다. 엄마는 면역력이 낮은 상태라 외출도 하지 못 하고 집에서만 지내게 되었지만, 영화와 책으로 심심함을 달랬다. 30년이 넘는 교직생활 중 처음으로 쉬는 모습의 엄마를 보았다. 집에만 있는 엄마의 모습이 낯설기도 했지만, 가끔 침대에 같이 누워 엄마의 신혼 시절 얘기도 듣고 소소한 대화를 하면서 엄마는 ‘되고 싶은 존재’, ‘훈육자’에서 ‘애틋한 우리 엄마’가 되어갔다. 엄마와의 마지막 날, 엄마는 ‘인생의 든든한 베이스 캠프가 되어주어 고맙다’고 했다.


그 이후 엄마는 착실하게 회복을 해 나가, 건강한 모습으로 일하는 엄마가 되었다. 나는 엄마 학교에 놀러 가는 게 참 좋다. 아기자기한 초등학생들의 교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지만, 엄마가 학교 구석구석 자신의 애정을 담아내는 모습, 평생의 노력을 담아 교장실에 자리를 잡고 앉은 모습을 보는 게 가장 좋다.


엄마의 배에는 엄마의 역사가 남겨져 있다. 엄마의 배에 남겨진 기록에는 내가 함께 했다. 나를 낳으면서 생긴 상처부터 이식 수술 이후 회복하기까지, 엄마는 숱한 상처를 새겨가며 지금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엄마에게서 나의 미래를 본다. 나도 엄마처럼 아이를 낳으며 배에 처음으로 상처를 만들게 될 것이고, 그 이후로도 많은 상처를 안으며 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나의 역사가 될 것이며, 이제 곧 태어날 딸과 함께 상처를 마주하게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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