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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Aug 12. 2021

처음으로 받은 원고청탁

수미, <애매한 재능>, 어떤책(2021)

"서영 씨, 나는 서영 씨 글이 정말 좋아." 선배는 두 손을 잡고 두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대단한 걸 쓰지 않았는데 이런 대단한 스킨십을 받아도 되는 걸까. 선배는 늘 내 곁에서 주기적으로 내 글에 대해 칭찬을 해주었다. 어떨 땐 내 앞에서 소리를 내어 내가 쓴 문장을 읽어주었다. 너무 좋다고, 이 부분이 이런 의미로 해석하면 맞는 건지도 물어봐주었다.


"네, 맞아요." 그럴 때마다 늘 눈물 비슷한 것이 목에서 꿀꺽 삼켜졌지만 민망하고 부끄러워 눈을 피하며 말했다. "감사해요."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별 것도 아닌 글에 칭찬받는 일은 죄스러우면서도 감사한 일이다. 민망하고 좀스럽지만 지금까지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이런 응원과 격려 때문이다. 그러나 나도 살면서 한 번쯤은 내 글에 자부심이라는 것을 가져보고 싶다. 내 글을 언제까지 눈치 보고 미안해하며 발행하고 싶지는 않다. 

원고청탁 메일은 처음이에요.... 답신이 온 작가님은 처음이에요


어떤 날은 한 뉴스레터를 구독해 어떤 작가의 글을 읽는데, 너무 난해해서 친구에게 글을 보여주며 "이 글 어떤 거 같아?" 물으니, "유명한 작가는 똥을 싸도 칭찬을 받는다며. 이게 그 똥인 거지 뭐"라고 말했다. 정말 그런 걸까. 대단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면 그 사람에 똥이라도 뒤져서 어제저녁에 뭘 먹었는지까지 분석해보고 싶은 걸까. 사람의 마음이란 그런 것일까. 똥에게 칭찬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정말로 궁금했다. 애잔한 일이다. 똥을 관찰하는 사람을 관찰하는 사람이라니.   


최근 감사하게도 첫 원고 청탁 제의를 받았다. 메일에는 "작가님의 글이 저희와 잘 맞을 것 같아서"라는 표현이 있었다. 누가 봐도 의례적인 표현임을 단번에 알아챌 일이지만 그 거짓말 같은 표현을 난 정말 믿고싶었다. 그리고 카페에서 원고 청탁 메일을 보내주신 대표님과 미팅이 있었다. 대표님은 계약서를 들이밀며 내게 '최서영 작가님'이라는 호칭을 써주셨다. 나는 또 별 것도 아닌 글에 작가라는 호칭까지 받는 것이 죄스러웠고 감사했다. "원고청탁 메일은 처음이에요"라는 말과 "답신이 온 작가님은 처음이에요"라는 말이 오고갔다. 대표님은 계약서까지 써놓고 연락두절이 된 작가가 있다고 했다. "연락두절될 일은 없으실 거예요." 


그리고 오늘 드디어 청탁받은 원고를 보냈다. 글이 평범할지라도 마감일만큼은 잘 지킬 자신이 있었다. 마감 기일은 10월이었지만 나는 일주일도 안 되어 원고를 보냈다. 개성은 없어도 성실함은 있으니까. 그게 내가 가진 유일한 재능이니까. 일을 하면서도, 출퇴근길 버스에서도 머릿속으로 청탁받은 글을 썼다. 중압감 보다도 그냥 글을 쓰는 행위가 마냥 즐거웠다. 게다가 돈까지 받을 수 있다니. 게다가 빨리 원고를 보내면 그만큼 빨리 돈이 들어온다.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천재가 아닌 평범한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것은 얼마나 분명한 경지인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평범한 사람의 일을 평가절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164p)

이번 주에는 요 근래 내 마음을 대변하는듯한 책 <애매한 재능>을 읽었다. 실은 <애매한 재능>이라는 책을 읽게 된 건 한 리뷰를 때문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글을 쓰는 사람들은 보통 가족, 육아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수미 작가는 그걸 해냈다." 꼭 모르는 사람에게 욕을 먹은 느낌이었다. 이건 나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욕이잖아! 그러니까 이 평범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책을 이런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작가님은 아실까? 이런 독자도 있다는걸? '수미'라는 이름의 작가는 그 이름처럼 평범한 사람이다. 작가는 세상에 많은 수미들이 무시당하지 않기를, 세상에 많은 수미들이 평가절하 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을 것이다.


너 같은게 글 써서 뭐하게

나에게도 '서영'이라는 이름에 대해 다른 필명을 권유하는 지인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내 이름을 굳이 고집하고 싶었다. 어차피 필명을 쓴다한들 평범한 내 글이 비범해지지는 않을 거니까. 그런 확신 정도는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꿋꿋하게 내 평범한 이름으로 성공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수미는 백일장에 나가겠다고 선생님에게 말했지만, "너 같은 게 나가서 뭐하게"라는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애매하다고 하기에도 애매한가?' 작가가 던지는 질문이 통쾌했다. 그럼 나도 비슷하게 질문해본다. '평범하다고 하기에도 평범한가?' 이 책은 애매하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평범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위로다. 평범한 환경만큼, 평범한 생각들.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사람에게 전하는 평범함에 대한 칭찬. 평범함에 대한 자부심. 지금 내가 갖고 싶은건 그 자부심이다. 수미 작가님을 만약 만나게 된다면 두 손을 잡고 두 눈을 바라보며 말하고 싶다. "작가님, 저는 작가님 글이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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