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서영 Aug 03. 2021

'소장용' 책이 나왔다

나의 첫 독립출판

책 써보겠다고 설레발 치던게 벌써 작년 여름이다. 원고 쓰고 현타 오고, 원고 고치고, 현타 오고 멈추고를 반복하다가 결국 아무 것도 되지 못 했다는 자괴감 속에 1년을 보냈다.  


출판사 컨택도 실패, 그렇다고 자비출판을 하기에는 가성비가 아쉽고,

1인 출판을 하기에는 공무원이라 안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종이가 너무 아까웠다.

그렇다고 내지 않기에는 우리가 그동안 쓰고 고치고를 반복한 시간과 정성,

글이 나에게 준 삶의 변화가 너무 아까웠다.


두고두고 책으로 남겨져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나와 가족들이 다시 꺼내보았을 때

선연한 기억들과 또 다른 메시지로 우리 삶을 변화시키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딱 두 권씩 나눠가지게 여섯 권을 소량 주문하고 책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본문 폰트는 성소수자들에게 길벗이 되어주고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꾼다는 의미를 가진 길벗체를 썼다.


북토리라는 제본 사이트에서 한글문서를 PDF로 전환해서 원고 파일을 보내고, 표지는 북토리에서 제공하고 있는 유료 템플릿(5만원부터~)을 이용해서 제작했다. 사실 클래스101에서 출판 온라인 강의를 들어서 인디자인은 사용할 줄 알지만, 제공하는 템플릿이 더 책스러워서 여기서 그냥 추가금을 내고 주문했다.

매년 그렇게 책으로 만들어서 보관해두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페이스북에 소장용 책을 주문했다고 글을 올리니, 대부분 정말 서점에서 살 수 있는 책이 나온줄 오해하는 분들도 많았다. 몇몇 분들은 자기도 책까진 아니지만 소장용으로 아이가 사춘기 시절을 기록한 일기를 제본하거나, 아내와의 연애시절 편지들을 묶어 결혼기념일날 선물 하는 분도 있다 했다. 내 주변에도 이렇게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많은걸 보니 실은 내가 1년동안 속앓이를 했을까 싶었다. 이 책은 90쪽 정도 되는 시집 정도의 두께를 가진 책이지만, 사실 원래 원고는 200장이 넘는 지금보다 두 배 정도의 분량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때 그 시절 감성들을 다 담도록 퇴고를 많이 하지 말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누구보다 출판을 하고 싶었던 나지만 막상 소장용으로 제작한 책이 도착할 때가 다가오니, 서점에 납품하는 책이 아닌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함께 글을 썼던 동생은 1년 전 원고 보다는 최근에 쓴 원고로 책을 냈으면 했고, 또 작은 서점이라도 납품을 해보고 싶어하며 지금 소장용 책에 대해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이러다 2쇄 찍는거 아니야?" 내가 던진 농담이지만 진담도 조금 섞여서 그런지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났다.  


드디어 소장용 책이 나왔다. 박스 열어 볼 용기가 안 났다. 상자 테이프를 떼고 상자 문을 여는 순간의 짜릿함이란! 생각했던 것 보다 책 표지가 너무 예뻐서 깜짝 놀랐다.

작가의 이전글 그건 나도 할 수 있어야 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