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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Jul 22. 2021

애수의 소야곡

약국에 들러 미세모로 된 칫솔 하나를 사들고, 우리는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대기를 하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도로 너머로 작은 꽃집 하나가 눈길을 잡았다. 남편에게 "카네이션 하나 살까?" 물으니 카네이션에 잠깐 머뭇하다가 "아니야, 됐어"라고 답했다. 허름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잠겨 있는 유리문 너머로 TV를 보는 어르신들과 눈이 마주쳤다. 요양원에 계신다던 남편의 외조모님을 처음 만나뵈던 날이었다. 


외조모님이 계신 요양원은 서울 번화가에 위치한 주상복합건물이었다. 건물 밖에서 들리는 생활소음들이 여과 없이 들려오는 그런 곳이었다. 꽃무늬 벽지로 된 각각의 방에는 병실침대, 선풍기 한 대만 덩그러니 있는 사람이 정말 사는 공간인가 의구심이 드는 공간이었다. 사실 그것이 요양원의 운영정책이라 했다. 요양원에 계신 분들 대부분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기 때문에 개인물품은 철저히 요양원의 허가 아래 조율되었다. 


방을 들어서자 우리는 외조모님께 인사를 드렸다. 외조모님은 우리가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는 얼굴이었지만 천천히 고개를 낮추며 생긋이 인사를 해주셨다. 방으로 함께 들어온 요양보호사는 우리가 챙겨온 물건들을 확인하더니 서류에 물건의 이름들을 적고 밖을 나갔다. 남편은 조금 전 약국에서 산 칫솔 포장을 뜯어 침대 머리맡에 있는 양치컵 안에 올려놓았다. 쓰던 칫솔은 침대 끝에 있는 작은 쓰레기통에 버렸다. 외조모님은 어떤 할머니와 함께 한 방을 쓰고 계셨는데, 할머니의 머리는 검었고 우리를 죽일듯이 노려보며 험한 욕을 계속 퍼붓었다.


"또 시작이시네. 안 돼요. 어르신." 복도 너머로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편이 노래 한 곡을 틀었다. 도입부만 들어도 오래된 노래임을 느낄 수 있었다. 외조모님이 노래의 도입부만 듣고는 머리를 까딱까딱 흔들며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사를 또박또박 읊조리기 시작했다. 입가에는 미소가, 눈에는 총명이 가득했다. 딱 1절까지만. 딱 1절까지만 정확하게 읊조리시고, 2절부터는 콧노래로 리듬을 타며 무릎을 치며 손박자를 맞추셨다.   


1962년 작고한 남인수 선생님의 노래를 가장 좋아하셨다. 노래 중에는 휘파람을 부는 구간이 있는데, 중간중간 나오는 플롯과 휘파람 선율이 아주 조화로웠다. 어떤 구간이 사람의 목소리이고, 어떤 구간이 악기소리인지 구분이 어렵고, 애초에 하나의 덩어리인채로 탄생한 노래처럼 아름다운 선율이었다. 여러 곡을 이어 들으니 왜 외조모님이 남인수 선생님의 노래를 좋아했는지, 왜 이 노래들이 그 시절을 풍미했을지 납득 할 수 있었다. 

그 후 외조모님을 종종 만나뵈고 오던 길이면 노래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외조모님을 마지막으로 보고 왔던 날은 그로부터 2년이 지나 병세가 악화되면서부터다. 좋아하던 복숭아에 눈길 조차 주지 않으시고, 카라멜 몇 알만 억지로 요양보호사가 입안에 물려드리면 하루종일 녹여드셨다고 한다. 몇 개월이 지나 외조모님은 중환자실에 들어가게 되었고 가족들은 존엄사를 선택했다. 존엄사를 선택한 전에도, 그 후에도 오랜시간 외조모님은 요양원에서 거의 모든 노년을 보내셨다고 과언이 아닐만큼 오래 계셨다.  


외조모님이 돌아가시던 날 남편과 나는 길 한복판에서 주저 앉았다. 들고 있던 물건들도, 가려던 길도 모두 잊은채 한참동안 주저 앉아있었다. 일주일 후 나는 아이를 출산했고, 그로부터 2년이 지났지만 남편은 외조모님이 아직 요양원에 계실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아이의 생일날이 돌아올 때면 외조모님이 또렷이 부르시던 애수의 소야곡을 생각한다. 노랫가사처럼 외조모님이 옛사랑이 되어 찾아온다. 


애수의 소야곡 

                       남인수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만은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그 누가 불러주나

휘파람 소리 

https://www.youtube.com/watch?v=l3EUCxcPMz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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