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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Jul 15. 2021

내 일이라는 이름의 기록

《한편》 X 책 만드는 일 ─ 독자 수기 공모]

옛날부터 '일'을 찬양한 사람은 엄청나게 많았다. 사람들은 일 잘 하는 법에 대해 자기계발서를 쓰는 것으로는 부족했는지 일 잘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나 일을 더 잘하는 사람들만 고르고 골라 책으로 엮어 아이들에게 달달 외우게 했으니 말이다. 그 아이가 커서 아이를 낳고 그 책을 여전히 아이에게 펼쳐 보이고 있으니, 일은 그래서 마침내 피폐해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일을 잘해 돈을 벌고 일 잘 하는 법을 팔아 또 돈을 버는 사람들. 형식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인류는 그것을 서술하는데서 벗어난 적이 없다. 이처럼 머릿속이 까맣게 되도록 사람들이 일에 대해 쓴 글이 죄다 진부한 글이니, 일은 그래서 마침내 그 정체를 잃게 되었다. 나처럼 글재주 없는 사람도 일을 찬양하는 글을 여러 편 썼으니, 다시 글로 떠들어 무엇을 보탤 수 있을까.


아침 알람이 울리면 5분 뒤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아, 일하기 싫다." 그런 후 남편은 조금 더 죽어가는 목소리로 “은퇴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아침풍경이 불과 사회생활 1년차 신입사원 일상이라는 것이 새삼 놀라운 지점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나와 결혼한 사년 동안 네 번의 이직을 했는데, 그 사이 이직하며 느끼고 깨달은 바가 제법 많았던지 매일 아침 듣던 남편의 잠투정은 어느 순간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던 그는 4년 후 회사에서 서무 역할을 해내느라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계약직 공무원이 되어 있었다. 어느 평범한 금요일 저녁에 우리는 아이를 재우고 치킨과 맥주를 음미하고 있었는데, 맥주를 한 캔을 비웠을 때였을까. 갑작스레 남편은 자신의 이름을 개명하고 싶다고 했다. 뒤돌면 생각나지 않는 이름을 갖고 싶다고 했고, 이름이 특이해 '튀는 사람'이 된 것이 싫다고 했다. 사람들이 쉽게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싫다고 하면서 상사에게 혼난 것을 일러 바치듯 아내에게 성토하는 것이었다.


그의 이름은 사람들이 아주 흔히 쓰는 ‘내일’이라는 단어였기 때문에, 내일아, 내일 보자 느니, 내일 일은 내일이에게 미루자 느니, 남의 이름을 쉽게 말장난 삼는 일들은 일상에서 비일비재했다. 여자친구였을 때도, 아내가 된 후에도, 그것을 지켜보는 주변인으로서 나도 점점 그런 일상에 적응을 하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김내일이라는 사람의 이미지는 내일로 미루는 게으름뱅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너무 꽉 조인 것도 아니고 너무 확 푼 것도 아닌 적당히 나사 풀린 사람이 좋다던 남편은 꼭 그런 표현에 걸 맞는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에 대한 히스토리를 따라 올라 가다보면 그 이름이 남편 당사자가 아닌 그의 형에게서 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김내일의 형 이름은 김매일이다. 매일이란 이름은 그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지어진 이름이라 했다. 태명이 지어진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 한다. 이름 자체에 종교적 색채도 없는 데다, 철학관에 가서 지어온 것도 아닐 테고, 태어난 날짜와 시간까지 계산하지 않았을 테고, 한자의 뜻이며 획까지 계산하여 지은 것 역시 아닐 것이다. 그러한 족보 없는 이름을 명색이 가문에 대를 이를 사내아이에게 붙이는 것이 김가네의 가오가 아닐 터, 역시나 그에게는 다른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 하고 알 이유도 없어진 이유는 출생신고를 위해 홀로 동사무소에 간 그의 아버지 성준씨가 어떤 연유에서인지 출생신고서에 김매일이라는 이름을 적어 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일'자 돌림으로 지어진 둘째 아들의 이름이 지금 내일씨의 이름이 된 것이다. 원인과 뜻을 알 수 없는 이름을 가진 사람과 그 사람보다 더 난해한 이름을 가진 사람에 이름에 얽힌 일화는 딱 여기까지만 서술할 수 있겠다. 


남편과 나는 전혀 상관은 없지만 비슷한 발음인 무슨 무슨 '네일'이라는 간판을 보면 남편이름으로 된 네일샵을 차리면 좋겠다고 남편을 보며 먼저 장난을 치고는 했다. 그렇게 남편조차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장난을 치던 때도 있었는데,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며 적어도 자신의 이름에 대해 자부심은 없다 할지라도 수치심은 없을 거라고 여겨왔던 것 같다. 그런데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 밤 이렇게 소중한 유희시간에 자신의 새 이름을 고심하며 눈썹 사이로 내천(川) 자가 그려진 남편의 얼굴을 보니 이 모든 문제가 예상치 못하게 내 탓은 아닐지 잠깐 주위를 돌아보게 되었다.


결국 뾰족한 이름을 찾지 못 하고 술만 연달아 마신 내일씨는 마침내 냉장고에 있던 술을 다 비우고 말았다. 내일씨는 다 먹고 난 그릇과 술잔을 부지런히 닦았고, 양치질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달그락 소리가 요란하게 부엌을 울려 퍼졌으나 그 소리는 금방 코 고는 소리로 바뀌었다. 거실로 나가보니 뱀허물처럼 순서대로 기다랗게 벗겨진 옷가지들을 뒤로 하고 나체의 몸으로 그가 코를 골며 소파에 누워 있었다. 그 누워있는 모습이 꼭 한자 한 일(一) 같기도 하고, 닳고 닳은 둔탁한 연필로 무심하게 그은 숫자 일(1) 같기도 했다.

아아, 내일은 정말 '내' 띄어 쓰고 '일'이 되어 있었다. 자신의 일을 묵묵하게 채워가는 사람이 되고 있는 중이었다. 겉으로만 보아도 그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내’라는 글자와 ‘일’이라는 그 두 음절 사이로 수많은 파도들이 들이닥치고, 그의 겉모습은 매끈한 조약돌 같았는데 분명 그 안에는 거칠고 느린 원석이 무성할 것이었다. 이러하니 내가 내 일에 대해 글을 안 쓸 수 있었을까. 내일의 일은 내게도 내 일이 되어 있었다. 김내일. 그의 옆에 세 살 배기 여자아이가 기저귀만 찬 채로 잠들어 있었다. 그 역시 뱃속에서부터 지은 태명을 이름으로 한 아이였다. 나는 또 김내일의 새로운 이름을 고심하고 있었는데, 편안함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올래(來)자와 편안할 일(逸)을 붙여 김내일이라는 이름이 어떨지 생각하다가 몸을 위 아래로 쭉 뻗으며 기지개를 편 뒤 그제야 편히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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