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마인>,(2021)
"출근 할 수 있겠어?"
부서장님이 물었다. 유연근무 신청서를 보여드리고 마지막 사인을 받을 때였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아이를 위해서 해야죠"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말해버리곤 나도 모르게 두 주먹에 더 힘을 주었다.
임신과 육아로 3년동안 써오던 육아시간을 다 쓰고 이제는 남들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고 한 시간 일찍 퇴근하는 유연근무를 써야한다. 아이를 낳고 키운 이후로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감수하는 것이 습관이 된 요즘은 '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 보다는 '하는데 까지 해봐야지'라는 마음이 더 들곤 한다.
지극한 모성애와는 거리가 먼 나의 입에서도 '아이를 위해 해야한다'는 말이 나왔을 때, 지난 주말 종영한 드라마 <마인>에 희수가 떠올랐다. 드라마 속에서 희수가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살던 대사가 이거였다. "아이를 위해서 해야죠." 희수는 남편의 혼외자식을 살뜰히 키워왔다. 법적 친모가 돌아왔음에도 희수는 자신이 엄마임을 입증하기 위해 소송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얼핏 보면 희수라는 역은 한국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엄마의 전형적인 클리셰를 따르는듯 하지만, 실은 새로운 형태로서의 엄마의 정체성에 도전한다. 드라마 제목처럼 <마인>은 극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나의 것'을 찾아나가는 이야기로 전개 된다. 극 중 많은 인물들 중에서 내가 희수라는 인물에 공감할 수 있었던 희수가 '남다른 엄마'였기 때문이었다. 거의 모든 회차에서 희수는 자신이 하준이의 진짜 엄마임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한다. 세상 사람들은 희수가 하준이의 엄마지만 진짜 엄마가 아니라고 조롱한다. 하지만 '진짜 엄마'란 무엇일까. 무엇이 엄마가 엄마됨을 만드는 것일까. 낳아준 정일까. 길러준 정일까.
나는 내 아이에게 진짜 엄마일까. 아이를 낳고 키운 엄마이지만 육아를 하는 내내 내가 진짜 엄마가 맞을까 늘 고민해왔다. 그 고민의 흔적들이 내 브런치 채널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유연근무를 시작하기 하루 전 일찍 일어난 아이를 다시 눕혀 꽉 끌어안았다. 아이의 살에서는 우유냄새가 났다. 평일 아침부터 여유롭게 아이 살냄새를 맡고 있다보니, 생후 두 달 된 핏덩이를 떼어놓고 복직을 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 때의 걱정과 고민은 오직 아이가 나를 진짜 엄마로 인지할까였다. 이렇게나 하루의 절반을 아이와 떨어져있는데도 아이가 나를 진짜 엄마로 봐줄까 였다. 함께 있지 않는다고 해서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길까봐 겁이 났다. 그런 고민이 무색해진 요즘. 지금 아무렇지 않게 워킹맘으로 살 수 있었던건 아이가 너무나 잘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마인>의 희수도 끊임 없이 하준이의 안색을 살피며 하준이의 마음이 어떨지를 돌아본다. 세상이 얼마나 참혹하건 희수는 하준이의 세상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 진짜 엄마란 무엇일까. 아이의 세상을 보호하는 것. 아이의 세상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나를 둘러싼 세상에 맞서는 것이 먼저다. 어떤 세상에도 온전히 내가 나인 것, 그게 희수의 모성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인>의 마지막화에서는 극 중 희수의 본래 직업이었던 배우로서의 삶을 회복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인>이란 무엇인가. <마인>의 극본을 쓴 백미경 작가는 마인이란 '세상의 편견에서 벗어나 진짜 나의 것을 찾아가는 강인한 여성들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드라마 <마인> 속 스토리는 극단적일지라도 <마인>이 담고 있는 의미들은 21세기형 카스트제도와 젠더이슈 등 시대적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기에 지극히 현실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드라마를 다 본 뒤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마인>은 무엇일까. 내가 나의 것으로 추구하며 사는 것은 무엇이며, 온전한 나다움이란 무엇일까. 여러분의 마인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