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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Jun 14. 2021

다른 나, 달라진 나

영화 <벌새>(김보라 감독, 2019)를 보고

엄마와 나는 좋은 책이나 좋은 영화를 보면 그것들을 종종 공유하곤 한다. 며칠 전에도 엄마에게 영화 하나를 추천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그 영화 옛날에 본 것 같은데?"였다. "그래도 다시 봐봐. 지금 보니 전혀 다른 영화가 되어있어"라고 대답했을 때, 엄마는 "같은 영화가 다르게 보이는건 자신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종종 옛날에 읽은 작품을 꺼내어 다시 본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과거의 나와 오늘의 나, 그 벌어진 틈새로 달라진 세상이 펼쳐진다.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그 틈새 사이로 무수한 것들이 변모 하고 있다. 분명 같은 사람인데도 다시 꺼내어보면 달리 보이는 것처럼 영화 <벌새>는 과거가 된 자신을 다시 꺼내 읽어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영화다. 과거가 된 나를 곱씹어 보느라 오래도록 여운이 남아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벌새> 스틸컷

1994년 대치동에 위치한 은마아파트에 사는 은희는 5인 가구에서 막내 딸이다. 열 네 살 중학생인 은희는 유아에서 청소년으로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성장에 나가는 과정 속에서 변모하고 있다. 그것은 동시다발적으로등장하는 인물들과 그 인물에 기반한 사건들로 인해 수정되어 간다. 


1994년 열 네살 은희는 교복을 입고 방방(트렘폴린)을 타고, 노래방에서 실컷 함께 노래를 부르고, 날라리를 종이에 적어내라는 교실에서 교과서 위에 낙서를 하는 여중생의 일상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확신이 들었는데, 역시나 감독의 청소년기에서 많은 모티브를 얻어 만든 영화라고 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완성될 수 있었던건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가 온전히 과거로써 관망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청소년기는 유아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성인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이중적 시기이면서도, 팽배한 차별과 혐오와 폭력 속에서 퇴행이 아닌 성장을 위해 스스로 도약해야하는 시기다. 노래방 대신 서울대를 가자고 외치는 담임선생님을 보여주면서도, 서먹해진 아이들을 위해 '잘린 손가락'이라는 노동요를 불러주며 힘들 땐 손가락을 보라는 작은 조언을 해준 학원 선생님의 모습도 보여준다.  


학원 선생님 영지는 칠판에 한자를 적는다.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相識滿天下 知心能機人).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가득하지만 마음까지 아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영화<벌새> 스틸컷

자신의 상처와 욕망만을 바라보기에도 바쁜 벌새 은희에게 한문 선생님 영지는 타인의 상처와 욕망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인도한다. 영지의 한 마디가 대나무의 마디처럼 성장의 흔적으로 남아 은희의 삶 속에 앞으로도 녹아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은희가 벌새이듯 영지 또한 벌새이며, 세상은 무수한 벌새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영지가 칠판에 적은 한문처럼 마음까지 아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있을 때쯤에는 은희는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과거가 된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그 벌어진 틈새로 달라진 세상에 새삼 놀라워 할지도 모른다.  

영화<벌새> 스틸컷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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