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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Nov 02. 2021

워킹맘의 어떤 망상

워킹맘 다이어리

얼마 전, 로봇청소기를 구입했다. 남편이 출근 준비를 하다 말고 로봇청소기가 쓰는 걸레를 왜 안 빠냐고 묻는다. 로봇청소기를 멋대로 산건 남편이었는데, 로봇청소기 설명서도 읽어보지 않은 내게 왜 그걸 묻는 걸까. 우리는 청소기를 사이에 두고 꼭 반려동물이라도 들인 것처럼 네 탓이오를 외치고 있었다.


몇 년 전 처음 남편과 집안일 분담 문제로 다투던 때도 떠오르고, 육아 분담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던 때도 떠올랐다. 지금이야 잠꼬대 수준의 티격태격이지만, 그때는 정말 서로를 안 볼 것처럼 살벌하게 싸워댔다. 한번 싸우고 나면 2박 3일이 피곤할 정도로 큰 에너지를 소모하곤 했는데, 그게 서로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싸우는 스스로에게도 소모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아챈 순간부터, 무언의 타협 지점이 생긴 것 같다. 그냥 이럴 땐 안 빤 걸레를 먼저 본 사람이 빨면 된다.


육아도 그런 식이었다. 분담이라는 개념을 없애면 분담이 된다. 오늘은 남편이 평소보다 조금 일찍 출근해야 된다고 직장에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평소 먼저 출근 준비를 하고 먼저 출근하는 편인데, 오늘은 같이 아이 등원을 준비하며 출근 준비를 했다. 맞벌이 부부로서 나름 육아도 집안일도 균형을 갖춰가고 있다고 철썩 같이 믿었던 것 같다.


어린이집에서 등원을 시키는데, 담임선생님이 아이를 보더니 당황한 기색으로 내게 말했다. "어머니, 오늘 수료 날인데요. 혹시 청바지랑 흰 옷 안 가져오셨나요?" 어린이집 공지사항을 확인했어야 했는데, 아이한테 또 미안할 일이 아침부터 생겨버렸다. 균형은 얼어 죽을! 난 아직도 육아가 서툴다.


"이런 것도  챙기는데, 나중에 학교 입학하면 준비할게  많아질 텐데 어쩌냐." 남편에게 하소연을 했다. "그래서 그맘때쯤 엄마들이 일을 많이 그만둔대잖아" 바쁘니까 무심한 걸까, 무심해서 바쁜 걸까 자문해보자면 이건 바빠서 무심한  아닌  같다. 사람에게 마음 쓰는 일이, 사랑을 주고 관심을 주는 일이 나는 항상 익숙하지가 않다. 나만 관심 가지면 그만이었던 인생이 고작 4-5 차에 이타적인 삶으로 뚝딱 변할 리가 없다. 관심이란 정말로 어려운 것이다.  아닌 다른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타적인 삶이란 정말로 어렵다. 그냥 차라리 야근을 매일 하라고 하면 하는 것이 훨씬  편할  같다.


'회사일' 말고 '가족일'이란 마음을 쏟아야 해서 더 어려운 것 같다. 회사에서는 작은 실수를 하면 죄송하다고 앞으로 잘하겠다고 사과하면 끝날 일들이 대부분이지만, 가족일에 형식적인 것이란 거의 없다. 마음을 쓰지 않은 것에 오히려 마음을 쓰게 되곤 한다. 처음부터 마음을 썼건 안 썼건 결국엔 마음을 쓰게 되어있다.


오늘 어떤 기사를 하나 읽었는데 서울의 모 지자체에서 돌봄 노동을 경력으로 인정하는 경력 인증서를 발급해준다는 내용이었다. 오늘 이 기사를 읽다가 별안간 망상을 해보았다. 회사일처럼, 돌봄 노동에도 근무성적 평정을 매기는 거다. 때에 따라 직급을 나누고, 잘 수료하면 인센티브도 주고, 승진도 한다. 거주지별로 돌봄 노동자들을 나눠 노조를 만들고, 처우개선을 위해 시위도 하고 서명도 받는 거다. 간담회도 하고, 공청회도 연다. 잘 꾸리면 독립기관으로 설립되어 내게 놓인 돌봄 뿐 아니라, 이 세상 돌봄에 관여하고 제도를 바꾼다. 혼자 상상하다가 키득 웃었다. 세상에 엄마, 육아, 돌봄을 소재로 다룬 경험담과 이야기들은 무수히 많지만, 그것이 이만큼 주인공인 이야기는 그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소설을 써볼까? 잠깐 머뭇하던 찰나. 그런데 내가 방금 상상한 것들이 아직 세상에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라는 사실과 또한 그 상상을 내가 잠시 비웃었다는 것에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이 떠올랐다. 학교 준비물을 학부모가 챙기는 게 아니라, 학교가 알아서 아이들의 준비물을 챙겨주면 되지 않았을까. 준비물을 챙길 때가 되면 할머니에게 용돈을 받아 문방구에 갔다. 내가 문방구에 갈 시간 즈음이면 모두가 그 준비물을 사 가기에 문방구 사장님은 내게 뭘 사러 왔냐고 묻지 않고, 몇 학년인지를 물었다. 지금이야 학교에서 급식제도가 생겼지만,  급식이 없던 시절에는 새벽마다 엄마들은 아이들 도시락을 싸느라 바빴다고 한다. 나중에 아이가 커서 엄마가 너 준비물 챙기고 학교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느라 하고 싶은 일을 그만두었다고 하면 아이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마음 씀씀이나 내가 저지른 작고 잦은 실수들이라고 여겨왔던 것들이 실은 기술, 제도, 정책에서 아직 개선하지 못한 영역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할 뿐이지 가족일이야말로 '형식'이 필요한 영역이고, 이제껏 수많은 형식들로 인해 세상은 더 나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이 모든 망상과 잡념이 아이를 하원 하러 가는 내 퇴근길에 생긴 것이다.


어린이집 하원 시간, 하얀 티셔츠에 청바지 대신 노란 맨투맨에 회색 바지를 입고 있는 아이가 웃으며 신발장 앞에 앉아 신발을 신고 있다. 내가 먼저 물어보기도 전에 담임선생님이 "오늘 수료식 사진 정말 귀엽게 찍었어요"라고 말했다. 수료식 장면을 회상하시기라도 하는 듯 선생님의 표정은 환한 얼굴을 하고 계셨다. "수료식 사진 기대하셔도 좋아요! 조만간 알림장에 올라올 거예요." 반면 준비물을 못 챙겨준 것이 내내 신경 쓰였던 나는 "옷을 이렇게 보내서 죄송해요"라고 말하며 말끝을 흐렸다. 선생님은 본인도 잊고 있었다는 듯 오히려 놀라며 "친구 여벌 옷 중에 하나 빌려 입혔어요"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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