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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Oct 30. 2021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박혜란의 세 아들 이야기

주말 아침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배달어플에서 커피를 검색한다. 비싼 최소금액과 배달료를 보고 화들짝 놀란다. 그냥 편의점에 가서 하나 사 오면 될 일인데. 고민하는 시간에 뛰어갔다 왔으면 될 일이었는데, 1시간이나 고민하는데 아침시간을 써버렸다.


혼자 애를 보면 별 것도 아닌 일이 도전이 되곤 한다. 세 살배기 아이는 혼자 침대방에서 자고 있고, 남편은 지방 출장을 갔다. 결국 아이를 혼자 집에 두고 잠깐 편의점에 가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이, 평소엔 멀쩡하던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있질 않나, 편의점 문이 닫혀있는 것이 아닌가. 편의점 문 앞에 "잠시 화장실에 다녀올게요"라는 메모를 암만 째려보고 발을 동동거려도 시간은 정확하게 흐르는 중이다. 


그렇게 어렵사리 이천 원짜리 디카페인 커피를 사들고 집 문을 여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이가 깨어있었다. 눈물 같은 것이 묻어나는지 허겁지겁 아이 눈가부터 확인한다. 운 흔적 그런 건 전혀 없고, 대신 아기 변기에 아침 소변을 눈 흔적과, 나 혼자 아침에 먹다 남긴 고구마를 오물거리는 모습 정도가 포착되었다. 아이는 뿌듯하다는 듯 웃어 보인다. 글에서 이미 짐작이 가겠지만, 나는 기우가 많은 성격은 맞다. 그래도 이 정도 기우는 다 어느 정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부모로서의 책임과 기우는 정말 한 끗 차이인 것 같다.  




걱정하지 마, 애는 알아서 커!


이 책이 25년 전에 낸 책이라고?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이라는 이 책의 저자는 가수 이적의 어머니이자 여성학자인 박혜란 작가다. 유퀴즈 인터뷰를 보다가 홀린 듯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믿는 만큼 자란다는 책 제목답게 아이를 닦달하지 않고, 믿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저절로 자란다는 내용을 담겨 있다. 말은 쉽다! 그런데 "걱정하지 마, 애들은 알아서 커!"라고 말하는 메시지와는 다르게, 엄마 박혜란이 아들 셋을 키우며 겪었던 기우와 갈등에 대한 에피소드는 굉장히 많다. 


1980년대 그 시절 부모님들에게 처음으로 불기 시작했다는 사교육 열풍. '성공하면 행복일까', '행복하면 성공일까'라는 뻔한 의제에 뻔한 대답. 박혜란 작가는 그 시절 부모세대로서, 이건 너무 하지 않나 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발간했다고 한다. "저희들이 알아서 컸는데 어머니가 왜 육아서를 내요?" 책을 내겠다는 엄마에게 아들 셋이 논리적으로 반박에 나선다. "아니, 그러니까 믿었더니 알아서 자랐다고 책을 내겠다고!" 책을 내기 전의 상황까지 작가의 가족 풍경이 유쾌하게 그려지는 책이다. 



아이가 장애를 갖고 태어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임신 했을 때부터의 이야기부터, 9살 아들이 장대비 속에 우산도 들고 가지 않고 별안간 가출을 한 이야기까지. 이 책은 알아서 큰다는 메시지와는 다르게 아이를 믿기 위해 부모가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를 여실이 보여준다. 아이에 대한 믿음이 크면 클수록,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줄수록, 너는 너고 나는 나지의 마음가짐을 갖되, 사랑을 놓지 않으면 아이는 놀랍도록 성장한다.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 하고, 빨래는 드럼세탁기와 건조기가 하고, 청소는 로봇청소기가 한다는 말처럼 아이는 아이 스스로 기능을 다 하며 알아서 큰다. 아이가 비뚤어지면 어쩌지? 하는 아이에 대한 걱정보다는, 아이가 어떻게 자라날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아이를 키우라고 저자는 말한다.  


'에이, 엄마도 서울대, 아빠도 서울대니 아들 셋도 머리가 좋아 서울대를 갔겠지!' 


댓글들을 보니 공부머리도 유전이라는 것에 여론이 기운다. 그런데 공부머리라는 것이 선천적이면서도 후천적인 것 같다. 같은 서울대 같은 과를 입학하고 졸업했다 하더라도, 스스로 그 과를 왜 선택했는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지는 전혀 다른 문제인 것인데, 박혜란 작가의 아들 셋은 모두 나름의 자율적 의지와 계획으로 서울대를 갔다. 가수 이적 씨도 사회학을 공부하다 갑자기 음악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사회학이 음악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선택했다고 한다. 박혜란 작가는 엄마가 아닌 박혜란 자체로 아들들에게 너무 큰 교육자료가 되어주었다. 자신의 삶은 자신이 개척해나가야 한다는 것. 불혹의 나이에 전혀 접해보지 않은 여성학을 공부하는 만학도가 된 작가의 삶이, 아들 셋에게 그 어떤 교육자료보다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박혜란 작가는 자기 삶 자체로 부모가 되었다. 


성공하면 행복일까. 행복하면 성공일까. 성공이든, 행복이든 좋으니 뭐라도 자기 삶으로 해내자. 아이는 나를 보고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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