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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Dec 30. 2021

예쁜 경쟁을 했으면 좋겠다

스걸파 5화 리뷰

"제가 좀 드리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이 말을 할까 말까 오랫동안 고민하던 심사위원 모니카는 손을 들고 말했다. 요즘 푹 빠진 스트릿걸스파이터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스트릿우먼파이터에 이어 요즘 정말 애청하고 있는 프로그램인데, 사실 쑥스럽지만 1화를 볼 때부터 주책맞게 눈물이 줄줄 났다. 엄마미소가 아니고 엄마눈물이라고 해야 할까. 굳이 나이로 따지면 이모뻘이나 언니뻘에 가깝지만, 애엄마가 되고 나니 이렇게 어린 소녀들이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만 보아도 딸 가진 부모 마음으로 괜히 더 뭉클해지는 것이다. 10대 소녀들에 안무가로서의 성장기를 지켜보는 것도 좋았고, 소신 있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누군가의 발목을 잡고 올라가는 건 아니에요. 자기의 실력으로 가셔야죠." 같은 음악을 두고 스퀴드와 클루씨 두 크루는 안무 창작 미션을 받게 되는데, 서로에게 창작한 안무를 주는 '트레이드 구간'에 대한 모니카의 지적이었다. 사실 여러 크루들의 트레이드 구간을 보면서 트레이드 구간을 '어렵게 줄 것인가, 쉽게 줄 것인가 ' 크루별로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어려운 안무는 어려운 안무대로, 쉬운 안무는 쉬운대로 각자 크루에 맞게 소화해나가는 것이 이 안무 창작 미션의 승패요인이 되었다. 


그런데 클루씨가 스퀴드에게 준 안무는 '어려운가, 쉬운가'의 문제를 벗어난, 안무라고도 할 수 없는 동작이었다. 두 크루 중 탈락을 하게 되는 중요한 미션이었던 만큼, 상대 그룹을 탈락시키기 위해 장난식의 트레이드 구간을 준 것을 모니카는 지적을 한 것이다. 



이 두 크루 대결에 상반된 대결이 앞서 있었는데, 브레이크 엠비션과 뉴니온의 대결이었다. 브레이크 엠비션은 비보잉 전문 크루였던 만큼 충분히 고난도 비보잉을 상대팀 뉴니온에게 트레이드 구간 안무로 짜 올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브레이크 엠비션의 크루 마스터 허니제이는 "예쁜 경쟁을 했으면 좋겠다" 하면서 트레이드 구간보다는 브레이크 엠비션의 기량을 더 발휘했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두 크루는 트레이드 구간을 통해서 각자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안무를 트레이드했고 각자의 정체성을 잘 살린 대결을 보여주었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은 정말 옛 말이 되어가고 있다. 옛날엔 정말로 칠판 위에 공부 열심히 하자, 남친 얼굴이 바뀐다 같은 문구가 걸려있곤 했다. 이런 경연 프로그램을 보면서 새삼 더 느낀다. 결과보다는 과정이다. 시청자들도 그 과정을 더 주목한다. 경연 프로그램 애청자로서 많은 경연 프로그램들을 보아왔지만, 1등보다는 2등 3등을 했던 사람이 프로그램이 끝나고 더 히트를 치는 경우들을 많이 보았다. 내가 절실하듯, 상대방의 절실한 마음도 존중해주는 아름다운 경쟁을 더 보고 싶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지도 행동하지도 말았으면 좋겠다. 


승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소신을 지켜나가는 것인 것 같다. 이 사람 말에 휘둘리고, 저 사람 말에 휘둘리는건 말 그대로 그 사람을 베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생각과 내 경험치를 쌓으며 세상을 해석해나가는 능력인 것 같다. 스걸파를 보면서 주책맞게 눈물이 나왔던 건 어린 소녀들이 조금씩 만들어나간 자기철학 때문이다. 모니카와 허니제이를 진짜 어른의 모습을 보았다. 이제는 내 꿈은 별 것이 없다. 그런 진짜 어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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