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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Jan 10. 2022

할머니가 입원하셨다

워킹맘 다이어리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다. 미접종자에다 먼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나는 전화기 너머로 할머니의 짧은 근황들을 전해 들었다. 엎친데 덮친다고 잘 지내던 동생이 대상포진에 걸렸고, 임신 중기를 넘어가는 이 시점에 실은 나도 몸이 성한 곳이 없다. 가만히 있어도 호흡이 딸리고 손목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고 가장 힘든 건 누워있다 일어나거나 걸을 때마다 아픈 것이다. 그러다보니 주말 내내 집에 있었다. 할머니는 괜찮으실까. 마음이 가라앉으니까 괜히 아픈 몸으로 집안일을 하나 더 해본다. 대상포진에 걸린 동생은 그럼에도 수유를 끊지 않는다고 한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건강하게도 살아야 하고, 그 건강한 몸으로 오래 살아야 한다. 이 두 가지를 지키는 일이 너무 어렵다. 집에서 무기력하게 있다가 오랜만에 <이웃집 토토로>를 보게 되었다. 다 기울어져가는 폐가 같은 집에 이사 간 사즈키와 메이. 투덜거릴 법도 한데 이리도 해맑을 수 없는 아이들이다. 맑은 아이들 얼굴을 보고 있자니 웃을 일 없던 내 얼굴에도 미소가 지어진다. 아이들이 명랑할 수 있는 건 건강하게 오래오래 우리가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일까. 두려움 없이 삶을 살아가기 때문일까. 소중한 것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때문일까. 순수함의 근원을 찾다보면 잊고 살던 것들이 너무도 많다는걸 깨닫게 된다. 주말 동안 시댁에서 재밌게 놀고 온 첫째 딸이 집으로 돌아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딸아이의 모습이 4살 메이를 닮아있다. 뭐가 그리 재미있을까. 아니, 나는 뭐가 그리 심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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