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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Jan 1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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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사무실. 점심시간인데 아직 자리에 앉아있는 직원이 있었다. 한 손에는 도시락 바닥을, 한 손에는 도시락 뚜껑을 들고 탕비실로 가다 말고 그분에게 물었다.


"식사 안 하세요?"  

"아, 오늘 볼 일이 있어서요." 


자세히 보니 가방을 싸고 계셨다. 임신 7개월에 미접종자인 나는 요즘 점심에 혼자 도시락을 먹는다. 제법 부른 배를 보시더니 몇 개월이냐, 언제 출산 예정이냐. 둘째 임신은 어떠냐. 근황 같은 질문과 답변이 오가다가, 실은 오늘 볼 일이라는 것이 아이가 올해 초등학교 입학을 하는데 돌봄 추첨이 있어 가는 길이라 했다. 


맞벌이인데도 돌봄을 추첨제로 한단 말인가. 안타깝게도 돌봄 추첨의 대상자 모두가 맞벌이 부부라고 한다. 대상자의 절반만이 방과 후 돌봄을 받을 수 있다. 4살 아이에 뱃속에 있는 둘째까지 육아휴직 없이 단축근무로 돌봄과 일을 병행하고 있는 것도 버거운 요즘인데, 머지않은 미래에 내게 더 크게 닥쳐올 위기가 지금 내 앞에 있던 것이다. 


"그래도 끼니는 꼭 챙겨 드세요." 할 수 있는 위로의 말이라고는 이 한 마디밖에 없었다. "긴장이 돼서 추첨 끝나고 먹으려고요." 돌봄 추첨이 평일 낮인 것도 화가 나지만, 이렇게 맞벌이 가정에 돌봄이라는 것이 추첨제로 굴러간다는 것도 너무 화가 났다. 추첨을 간 직원분을 뒤로하고 도시락을 먹는다. 어제저녁밥을 준비하며 소분한 제육덮밥 도시락. 마트도 못 가고 백화점도 못 가는 처지라 머릿속으로 내일 먹을 도시락, 오늘 저녁밥을 생각한다. 모레도 도시락을 싸야 하고 저녁밥을 해야 하니 사고 싶은 식재료를 떠올린다. 며칠 전에는 마스크도 안 하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꿈을 꿨다. 오늘따라 유독 입맛이 없어 도시락을 반이나 남기고 다시 가방에 도시락을 넣는다. 오후에 먹어야 되는 영양제들을 입에 털어 넣는다. 


다음 날, 추첨은 어떻게 됐는지 그분에게 물었다. 

"떨어졌어요. 대기 1번을 받았어요." 

"대기 1번이면 괜찮지 않나요?" 

"희망고문이죠. 방학 때나 대기가 빠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주무관님 때는 더 나아지겠죠."


나는 어떤 위로의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아질까. 

어떻게든 되겠지의 마인드로 지금까지 버텼는데 앞으로도 버틸 수 있을까. 그래도 해봐야 한다. 하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하는 수밖에는 방법이 정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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