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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Jan 25. 2022

엄마 마음

워킹맘 다이어리

지난 주말 명절을 앞두고 미리 외가에 다녀왔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첫째 아이를 보여주던 날이었다. 할아버지는 우리 식구가 오자마자 아이를 품에 안고 거실을 빙빙 돌아다녔다. 배밀이를 하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지 못 했으니, 지금은 말도 하고 재롱도 피우는 이 모습이 얼마나 보고 싶으셨을까. 


교자상에 빙 둘러앉아 이모가 아침부터 끓인 녹두 삼계죽을 먹었다. 임신 7개월 차인 요즘은 아픈 곳이 너무 많아 입맛도 없는데, 이 날 먹은 녹두 삼계 죽은 너무 맛있어서 두 그릇이나 먹었다. 


할머니는 아이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시면서, 너네 엄마는 이랬지, 너네 이모는 이랬지 하신다. 엄마도, 이모도 평생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라고 했다. 이불을 걷어차고 자는 아이 모습을 보시더니 너도 어릴 때 이랬지 하시는데, 이상하게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뭉클해졌다. 마치 어제 일을 회상하는 듯한 할머니 표정 때문이었던 거 같다. 매일 밤마다, 새벽마다 걷어찬 이불을 다시 덮어주는 내 모습이 어쩌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 엄마의 모습, 할머니의 모습 같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줄곧 생각했다. 더 멀리 사시는 친가 할머니를 아기 낳기 전에 보고 와야 할까. 나 대신 동생이 친가 할머니와 2주 동안 함께 있는다고 한다. 이기적인 마음이라는 걸 뻔히 알지만 당장 내 몸이 아프니 가지 못 하겠다 여겼는데, 아픈 것조차 꾀병 같고 이유조차 깃털 같이 가벼운 핑계 같다. 


아무리 아파도 아이가 아프면 내 몸 움직이는 게 엄마 마음인데, 나는 엄마 마음으로 할머니를 바라보지 못하는구나 싶은 것이다. 다음 날, 이모가 싸준 녹두 삼계죽을 데워 먹는다. 집에 온 아이는 없던 투정이 더 늘었다. 밥 먹기 전에 과자 안 줬다고 떼쓰고, 밤이 늦어 재워준다고 떼쓰고, 밤늦게 밥 먹겠다고 떼를 쓴다. 마음속에 침전물처럼 이기적인 마음들이 더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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