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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Sep 22. 2022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워킹맘 다이어리

할머니가 돌아가신 그날. 2022년 9월 17일 토요일. 남편은 주말에도 출근한다고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는 두 아이가 어질러놓은 장난감, 이불, 설거지, 빨래. 육아와 집안일을 아침부터 하고 있었다.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정확하게는 남편 휴대전화로 전화가 온 것이었는데, 하필이면 아이폰 업데이트 중이라 전화기가 꺼져있을 때였다.


할머니가 위독하다고. 사실 그 며칠 전부터 할머니가 위독한 상태인 것은 알고 있었다. 요양원에 들어가게 된 것도 할머니 병세가 악화되었기 때문이었으니까. 이제 정말 곧이 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아침부터 우유를 침대에 쏟은 것이다. 겨우 치우고 돌아섰는데 이번에는 로션을 어제 산 책 위에 쏟았다. 두 번이나 엎지르고 나니 오늘 뭔가 심상치 않다는 기분이 든다. 빨리 서두를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고 어수선하니 마음도 어수선해서 뭐부터 해야 할지 갈피가 안 잡힌다.


사실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난 충분히 뭐든 잘 해내는 사람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던 사람인데, 자꾸 내 생각이 아닌 것들이 나한테 불쑥 찾아왔다. 해내지 못할 거 같다는 생각에 자꾸 사로잡히는 것이다. 워킹맘인 나는 일도 잘 해내고 육아도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꾸 난 못 할 거야, 난 못 해, 그래 난 원래부터 못 했어 이런 생각이 든다. 브런치에 우울한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옮겨 적은 날이 많았는데 결국 발행하지 못하고 서랍장에 저장해둔 글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해서 정신과 예약을 한 것이 19일 월요일이었는데. 그날이 할머니 발인이 되었다.


위독해서 당장 임종을 봐야 하는 가족들에게 급히 전화가 왔다고 하는 순간까지도 나는 내 식솔들 챙기느라고 발이 묶여있었다. 내 발이 묶여있는 것, 그게 내 우울의 원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엔 이런 글조차 우울감으로 인해 쓰지 못했고 막상 쓰면 이렇게 술술 쓰지만 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시작을 하지 못 했다.


돌도 안 된 5개월 아기를 데려갈 수 없다고 판단한 우리는 시댁에 아이를 맡겨야 했고, 그 와중에 할머니 보러 내려가는 첫째 딸 짐, 남편 짐, 내 짐, 거기에 시댁에 맡기는 둘째 짐까지. 거기에 그냥 다 제쳐두고 갈 수 없어 돌리던 빨래를 기다렸다. 옷장에서 검은 옷을 꺼내 드는데 눈물이 났다. 우리 할머니 아직 살아있는데 내가 왜 이런 옷가지를 챙겨야 되냐고. 화가 나서 눈물이 났다. 돌아가는 빨래에 아직 못다 한 설거지에, 챙겨야 할 짐들에, 이 와중에 배는 또 고파서 밥은 먹고 출발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엉키니 이미 난 틀려먹었다 라는 생각이 또 불쑥 내 마음에 들어온다. 난 안돼. 난 할 수 없어. 이미 틀렸어.


그런 마음이 드는 와중에도 난 짐을 챙기고 시댁으로 갔다. 아이 둘에 짐까지 한 짐 싸들고 전쟁통에 피난 가는 사람처럼 시댁으로 향했다. 할머니에게 가는 길이 너무 멀었다. 그렇게 가서도 한참을 일하는 남편을 기다리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동생이 엉엉 울며 부고를 전했다. 나는 펑펑 울 수가 없었다. 난 울만한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순간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 식솔 챙기느라 바빠서 우리 할머니 마지막도 함께 하지 못 했다고. 다시 집에 들러 마저 짐을 챙기고 드디어 출발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이미 몇몇 친지들이 모여있었다. 만나면 우느라 정신없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웃는 아이들 때문에 그래도 웃고 있었다. 장례식장을 키즈카페 마냥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니 아까는 쇠사슬 같던 아이들이 너무 고맙게 느껴지고 아이들이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희가 있어서 그래도 웃을 수 있네. 도착해서도 나는 아이들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본가에 들어가서 아이들 씻기고 재우고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서 입관하러 와야 했기 때문에.


장례식에는 슬퍼할 겨를이 없는 것 같다. 슬플 때쯤이면 다음 절차를 준비해야 했고, 눈물을 훔치고 조문객들을 맞이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 같이 있다 보면 그래도 웃음이 나고, 눈물도 참을 수 있었다.


입관식도 너무 정신없었다. 새벽에 그 많은 친지들이 옷을 대여하고, 밥 먹고 다 모여야 할머니 입관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기 신발도 못 찾고 슬리퍼를 신고 온 사람도 있었다. 울면 할머니 얼굴이 안 보이니까 울면 안 된다고 장례지도사가 말했지만 자꾸 눈앞이 가려졌다. 할머니 머리를 쓰다듬는데 할머니 얼굴이 너무 고왔다. 어렸을 때 할머니 뒷머리를 만지작거리면서 자는 습관이 있었는데 쓰다듬어 넘기는 그 머리가 옛날 그대로였다. 할머니 가실 줄은 알았지만 보내드리기 싫어서 마지막 말은 생각도 못 하고 심지어 입관하는 순간까지도 인정이 안 되어 마지막 말은 준비되지도 않은 말을 뱉게 되었다. “할머니 좋은 곳으로 가셔. 우리 그곳에서 만나.” 우는 동생 등을 쓰다듬었다. 그런 나를 또 고모가 쓰다듬었다. 나중에 입관 끝나고 올라오는데 하지 못한 말들이 계속 마음속에서 새어 나왔다. 할머니가 내 할머니라서 고마워. 할머니 말 잘 안 듣는 손녀라서 미안해. 이런 말들이었다. 입관할 때 말할걸. 살아생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올라와서 마저 울고 있는데 큰 고모가 와서는 대뜸 내게 미안하단다. 고모는 “출산한 지 얼마 안 돼서 두 달 전에 몸조리하러 내려왔던 네가 몸조리 보다 할머니 수발들고 할머니 욕을 듣게 해서 미안하다 “고 했다. 미안하다는 고모와는 달리 오히려 할머니에게 이제 막 태어난 할머니 증손주를 보여드릴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고모는 할머니를 대신해서 미안하다고 전하는 거라고 했다.


평생을 자기 후손들을 돌보다 죽은 우리 할머니. 죽는 직전까지도 후손들은 할머니에게 바라는 것, 기대하는 것이 많았다. 나의 경우는 할머니가 증손주들을 보고 가시길 원했다. 어떤 후손은 할머니가 구원받기를 원했고, 어떤 후손은 집에서 끝까지 건강하게 돌아가시기를 바랐다. 그 바람은 또 할머니 바람이기도 했다. 우는 아이들을 달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할머니의 삶은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새삼 깨닫는다.

 

입관 후 조문객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릎이 닳도록 절을 했던 것 같다. 입관하고 돌아오니 자꾸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리 부모님이 돌아기시면 뭐부터 해야 할까, 어떤 모습일까. 내가 죽으면 아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줄 지은 조문객들을 보니 우리 엄마 아빠가 얼마나 잘 살아오셨는지 알 수 있었다.

장례절차에서 여자는 역할이 크게 없다. 머리에 리본 하나 달아주고 오히려 피도 한 방울 안 섞인 손주 사위들이 더 역할이 많다. 이러니 우리 할머니 세대 사람들이 그렇게 아들을 낳고 싶었겠구나. 장례문화는 시대의 흐름을 전혀 따라갈 생각이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어쩌다 보니 새벽이 되고 올 조문객들이 모두 오고 나니 밤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할머니 앞에서 담요를 덮고 잠을 청했다. 향이 꺼지지 않을까 중간중간 보았는데 볼 때마다 향이 꺼지지 않고 있었다. 나 말고도 계속 향을 지켜주는 친지들 덕분에.


그렇게 새벽이 아침이 되어갈 즈음 화장을 하러 버스에 탔다. 호우주의보였다. 할머니 화장이 끝나고 한지에 쌓여 할머니가 한 줌이 되어 아빠가 할머니를 받았다. 태운 것이니 따뜻한 것인데 할머니 온기 같아서 한참 그 위에 손을 얹고 있었다. 발인을 마치고 집에 오랜만에 모인 친지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나마 유일하게 아이들 재롱이 있어서 몇 년 간 못 본 어색함이 사라지고 또 만나자는 기약도 더 기꺼이 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밥도 일부러 잘 챙겨 먹고 영양수액도 맞고 마사지도 받았는데 기운이 다시 돌아올 기미가 없다. 혹시나 코로나일까 봐 검사도 했는데 음성이다. 슬퍼할 겨를도 제대로 없이 지나간 할머니의 장례. 할머니는 급하게 떠나셨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쉬이 사라지지 않을 슬픔. 나는 솔직히 앞으로가 조금 무섭다. 살만큼 사셨지. 아흔하나면. 이렇게 말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어머니와도 같았던 할머니였기에. 내 마음이 자꾸 무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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