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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Sep 27. 2022

산후우울증 일기(1) 우울감인가 우울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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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우울증인가, 산후 우울감인가. 사실 스스로 판단하기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나의 경우는 삶을 지탱하고 있던 모든 욕구들이 바람 빠지듯 다 빠져버렸다. 처음에는 식욕과 성욕이 없었고, 만성적인 피로감이 오랫동안 지속됐다. 살아서 뭐하나, 자기 비하와 같은 것들이 찾아왔고 일기를 자주 쓰는 편인데 일기에 써놓은 최근 글들을 보면 감정 기복이 굉장히 심했다. 감정이 조금 괜찮아지고 다시 그 일기를 보면 놀란다. 전반적으로 삶에 대한 욕구들이 사라지니 외출하는 것, 사람 만나는 것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자해나 자살시도는 한 적 없지만 죽고 싶다는 충동이 잦아졌고, 지금은 내 것이 아닌 생각이라 여기지만 빈도가 늘어난다면 언젠가 내 것이 될 것 같은 두려움도 찾아왔다. 이 모든 것들이 둘째 출산 후 찾아왔으며 6개월 간 지속됐다. 첫째 출산 후에도 비슷했지만 더 악화된 모습이었다.


내 증상을 설명하자면 대략 이렇고 내가 진행한 상담들은 아래와 같다. ​정리하자면, 총 세 가지로 나뉜다. ​


첫 번째, 임신육아종합포털 아이사랑에 상담실 카테고리에 산후우울증 상담실이 있다. 주 2회 정도 전문의가 상담글에 답글을 달아준다.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을 수준은 아닌 것 같고 지금 내 상태를 가늠하고 파악하고 위로받고 싶은 정도라면 아이사랑 사이트를 추천한다. 산후우울증 상담 카테고리가 있어 출산 후 혹은 출산 전 정서가 불안정한 상태라면 글을 올리면 된다. 개인적으로는 나에게 맞춰 올려주신 꼼꼼한 상담글에 감동을 받기는 했지만, 직접적으로 내 우울감을 해결해주지는 못 했다. 그냥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주는 사람의 시선 정도로 만족한다면 상담실에 글 올리는 것을 추천한다.

아이사랑의 경우 수요일에 글을 올렸는데 금요일에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주 2회 일괄적으로 답변이 올라온다. 정신건강센터와는 다르게 내 상담글에 집중해서 내 상담글을 분석해서 맞춤형으로 답글을 달아준다는 특징이 있다. 최대한 상세하게 자신의 상태를 적는 것이 좋다. 이 상담실은 오프라인 상담까지는 이어지지 않고 상담글에 의존해서 최대한 진찰해준다는 것이 특징이다. 전문의가 직접 올려주는 글이기 때문에 신뢰도가 있는 글이라는 점이 장점이지만, 전문의 스타일에 따라 오히려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정신건강센터에서 오프라인 상담을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이곳에서 거의 무료에 가까운 비용으로 부부상담도 진행한다고 한다. 모두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통해 진행된다.

두 번째, 지자체마다 상이하겠지만 나의 경우 관할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어서 그곳에서도 ​상담을 받았다


정신건강복지센터 온라인 상담의 경우 상담글에 대해서 분석해주지는 않으나 일반적인 증상과 검사방법에 대해 알려준다. 상담 종류는 검사 비용이 무료라서 정신과를 먼저 찾기 전에 상담 신청부터 진행했다. 예약제로 이뤄지기 때문에 대면상담까지 이어지는데 수일이 걸릴 수 있다. 나는 일반상담으로 신청했고, 산후우울증 검사를 진행했다. 매주 목요일 전문의가 출장을 오셔서 30분 단위로 상담받을 수 있다. 나는 그전에 상담사 분과 일반상담을 진행했다. 마찬가지로 30분 정도 소요됐다. 정신건강센터는 병원이 아니므로 약을 처방해줄 수는 없다. 정신과 방문이 부담스럽거나, 정신과 방문 전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확인받고 싶다면 먼저 정신건강센터에 상담을 진행하는 걸 추천하는데, 나의 경우 정신과를 자주 다녀보지는 않아서 초기라고 판단된다면 먼저 가보길 바란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내 병을 호전시켜주는 데에는 큰 역할을 하지 못 한 것은 사실이다. 이곳에서 받은 일반상담에서 간단한 산후우울증 검사가 있었는데, 홈페이지에도 올라와있어 검사가 가능하지만, 상담사님의 조언해주신 것이 큰 도움이 된 것인데, 상담을 진행하면서 상담사로부터 들었던 의외의 답변은 '일상의 변화'다. 식욕저하, 장시간 체력소모로 인해 점심시간 동료들과 밥을 먹지 않고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는데, 그 점을 예로 들으시며 증상이 발현되기 전과 비교했을 때 이런 식으로 일상의 변화가 있다면, 치료를 염두하고 상담을 진행해보아야 한다고 했다. 상담사님께서 알려주는 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은 수면장애와 불안증세다. 다행스럽게 나는 수면장애와 불안증세는 없었다. 대신 만성 무기력증과 식욕저하, 성욕저하, 죽고 싶은 충동적 사고 등이 주 증상이었다. 산후우울증 검사에서 나의 경우 경도가 조금 심한 산후 우울감으로 나왔고, 정신과 전문의를 통해 상담을 진행해야 한다고 나왔다. 나의 경우 정신건강센터가 직장 근처에 있어서 병원 진료와 정신건강센터 방문을 동시에 진행하는 걸로 생각하고 전문의 상담을 예약해 진행했다.  


세 번째, 정신과에서 상담받기. 결국 결론은 정신과에 가야 한다. 바쁜 사람이라면 위 과정을 모두 스킵하고 정신과를 가야 한다. 정신과에 간다고 해서 큰일이 나지 않는다. 정말 많은 환자가 병원을 드나든다. 정신과의 경우 초진 비용이 들고, 위 설명한 두 가지 방법의 경우와 달리 유료라는 단점이 있는데 검사비 약값 다 얼마 안 한다.


정신과는 대부분 예약이 필요하다. 심한 경우는 내년에 예약을 잡아줄 수 있다는 곳도 있었다. 그래도 가까운 곳에 있어야 만일의 지속 상담이 요구될 때 편리하므로 가까우면서 예약 잡기 제법 빠른 곳을 선택했다.  모든 내원자가 검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했고 초진의 경우 짧으면 20분, 검사가 필요한 경우 1시간 내외다. 나의 경우는 상담과 검사, 그리고 병원과 연계된 다른 병원에서 피검사까지 1시간 반 정도 소요됐다. 병원마다 진료시간은 차이가 있으니 참고하고 읽어봐 주시면 좋겠다.

내가 받은 검사는 거의 열 가지 정도 되는 검사를 했다. 스트레스 검사, 불안도 검사 등등 여러 가지를 본다. 검사 결과지는 병원에서 주니까 집에서 더 자세하게 읽어볼 수 있어 좋았다.  숙제 같이 검사지 두 개를 주셨고, 일주일 단위로 병원에 내원하며 상태를 체크한다. 아이를 키우고 있어 잠이 오는 약은 빼주셨다. 갑상선 질환일 수도 있어서 다른 연계된 병원에서 피검사도 해주셨고, 엄청 친절하진 않지만 정확하게 진단해주시려고 하는 모습이 마음에 드는 병원이었다. 검사까지 (피검사 제외) 4만 원 대가 나왔고 약값 포함이다.

이렇게 나는 우울증 치료를 시작했다. 정신과 선생님은 우울증은 마음의 병이 아닌 머리에서 나온 병이라고 했다. 호르몬 불균형으로 벌어진 것이니 금방 호전될 것이라고도 해주셨다. 앞으로 당분간 내 일기는 우울증 치료 일기가 될 것 같다. 첫째 임신 출산 후에도 비슷한 우울감으로 오래 고생을 했었는데, 둘째를 낳고 보니 이게 일시적인 감정은 아니라는 생각에 이렇게 행동에 옮기게 되었다. 산후우울증은 산후 6개월 이내에 치료를 받지 않으면 증상이 더 깊어질 수 있으니 최대한 빨리 진단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보통은 약물치료는 4-5주 꾸준히 복용해야 효과를 느끼고 보통은 8주 정도 처방을 받고, 약물치료 대상 대부분은 증상이 호전된다고 한다. 산후우울증을 너무 경미한 것을 치부하거나 혹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 치료를 미루거나 하면 병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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