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다이어리
제목을 먼저 써놓고 보니 이런 기괴한 문장이 없다. 오늘도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이는 좋은데 육아는 싫다. 나는 육아가 너무 싫다. 이런 썩어빠진 마인드로 엄마 노릇을 하고 있으니 맘충이라고 욕을 먹는 것일까. 그런 혐오들이 모여 이 세상을 아이 안 낳는 세상으로 만들어 멸망을 유도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산후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내가 남편도 너무 안 쓰러웠는지 다음 달부터 자신이 나 대신 단축근무를 하고 아이를 돌봐주기로 했다. 원래 남편에게 부탁했던 시간보다 한 달 더 당겨서 봐주겠다는 것이다. 참고 참다가 남편에게 울면서 하소연한 것이 효과가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단 1초도, 단 한순간도 나는 쉴 수 없다" 말해버렸는데, 남편의 마음에도 그 말이 많이 걸렸던 모양이다. 어제는 죽을 것 같고, 죽고 싶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남편이 퇴근하고 오자마자 딱 30분만 자겠다고 했다. 남편에게 약속한 30분이 지나고 나는 또 그 죽을 것 같은 마음으로 아이를 먹이고 돌보다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기저귀를 보니 오래갈지 않은 대변이 아이 엉덩이에 피떡이 되어 짓물러 있었다. 나는 또 나에게 화가 났다. '난 엄마자격이 없어.' 하루 종일 아이의 피떡이 된 엉덩이가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퇴근하고 다시 집에 와서 반나절 동안 아이에게 기저귀를 하지 않고 놀렸다. 바닥이 오줌 바다 똥바다가 되었지만 그게 내 업보였고, 그걸 치우고 닦는 것이 내가 내게 내린 벌이었다. 내 속도 모르고 웃는 우리 둘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앵두 같이 작고 귀여운 입술, 나를 똑 닮아 축 처진 눈썹, 엄청 작은 구멍이지만 먼지가 송송 들어가 코딱지가 생긴 작은 콧구멍까지. 귀엽고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는 아기자기한 얼굴을 보고 정말 죽고 싶은 마음이지만 웃었다. 그리고 너무 미안했다.
원래라면 잘 읽던 책도 산후우울증 치료를 받고 나서는 가려서 읽는 편이다. 정신의학과 전문의가 쓴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라는 책을 평일 점심시간 도시락처럼 야금야금 읽고 있다. 한 달째 아껴서 읽었는데도 아직도 다 못 읽었다. 둘째 출산 후 출산휴가 3개월 후 바로 복직한 이후로 회사 근처에 있는 단골 서점에 한 번도 들르지 못했다. 이 또한 산후우울증 때문에 책이 안 읽히기 때문이었는데, 오늘은 그냥 서점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가게 되었다. 서점 사장님이 나를 기억하시고는 "뱃속에 있던 아이는.. 나온 건가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셨다. 그리고 출산 전에 받지 못 한 굿즈도 기억하시고 챙겨주셨다. 딱히 살 책이 있어 들른 것은 아니었지만, <돌봄이 돌보는 세계>라는 책을 사고 나왔다. 그렇게 일하면서 육아하는 게 힘들다고 징징대면서도 매일 우울증 약을 먹으면서도 나는 돌봄, 육아라는 주제에 항상 혹해한다. 그렇게 점심시간을 이용해 읽은 책은 또 내 뼈를 때린다.
돌봄 노동은 여성과 남성 간에 민주적으로 재분배되지 않고, 저소득 여성과 고소득 여성 간에 재분배되는 현실을 낳았다. 결과적으로 젠더 질서와 계층구조를 유지하고 공고히 하는데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하지만 동시에 나이 든 부모, 어린 자녀,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이들을 돌보는 노동으로부터 탈주하고 싶은 욕망을 점점 더 품게 된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하기 싫고, 누군가 저비용으로 알아서 해주었으면 하는 일, 그것이 돌봄이 처해 있는 정직한 현실이 아닐까?(돌봄이 돌보는 세계, 11-1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