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언니
내가 나를 주워 담는 시간 _ 언니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즐기는 레크레이션 게임을, 나는 오래 전부터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교회 수련회나 대학 엠티, 워크숍 같은데서 레크레이션을 시작한다고 하면, 다급히 화장실을 가는 척 하고 나왔다. 도리어 매순간 의문을 가졌다.
사람들은 왜 게임을 좋아할까?
레크레이션이 직업인 레크레이션 강사라던지, 게임을 주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와는 정반대인 사람이라고 타인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었다.
모두 원을 그리고 엎드리고 누워 손등을 때리는 손등때리기게임.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임이다. 게임을 하는 매순간 나는, 남의 손등을 때리고 희희낙락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혹여라도 부득이하게 그 게임에 참여라도 하게 되면, 남에게 내 손등을 맞을까봐 발끝에도 힘을 주었다. 나중에 게임이 끝나고 이불속에서, 손등이 아닌 얼얼해진 손바닥을 주무르며 생각했다.
'나는 한번도 내가 이길거라고 생각하지 않은거야.'
그런거다. 나는 내가 질 생각만 한거다. 이길 생각은 하지 않아 게임이 즐겁지 않은거다. 나는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처음으로 떠오르는 단어가 '면접', '시험장'이다. 떨어지면 어쩌지, 탈락하면 어쩌지, 지면 어쩌지. 온통 질거라는 확신만 가득하다.
그러나 두려움이라는 것은, 아주 본능적인 감정이다. 눈을 보호하기 위해 속눈썹이 있고, 손을 보호하기 위해 손톱이 있듯이,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누구에게나 있는 방패다. 두려움은 일종의 감정의 방패 같은 것이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원초적이며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사실만 인지하는 그 자체로 삶의 태도가 달라져있는 것을 목도한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눈을 보호하기 위해 속눈썹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눈을 뜨는 것, 손을 보호하기 위해 손톱이 있는 것을 인지하고 쥐고 있던 주먹을 피는 일이다. 두려움에 매몰되어, 두려움에 휩쓸려 내가 정말 움직이고 싶은대로 움직이지 못 하는 것만큼 미련한 일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따금 두려움이 극도로 치솟을 때, 혼잣말을 한다.
'내가 지금 두려운건 자연스러운거야. 누구나 이 상황이면 두려울거야. 다만 나처럼 내색하지 않을 뿐. 하지만 난 이것을 잘 해낼 수 있어. 나만큼 이 일을 잘 해낼 사람이 없다는 걸 난 믿어.'
혼잣말을 하면서 매번 깨닫는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내가 나를 믿는 방법 뿐이다. 이 세상이 끝날 것 같고 죽고 싶을 때, 나는 내가 놓아버린 나에 대한 신뢰들, 믿음들을 주워담는다. 까맣게 먼지 묻은 나에 대한 믿음을 손으로 툭툭 털어낸다. 그리고 내가 나에게 말한다. 버려서 미안하다고. 그 대신, 타인의 평가만 의지하고, 남들이 만든 틀에 나를 끼워맞추려 했던 순간들을 내려놓는다.
내가 주로 이불속에서 이불을 걷어차는 순간은, 남의 시선을 순간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거드름을 피웠던 순간들이다. 하루는 직장 내에서 사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갑자기 사장님이 내 이름을 호명하고, 일어나 자기소개를 하라고 했다. 나는 엄숙해진 분위기를 띄우겠다고 나를 '사장님 보다 유명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물론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농담인 것을 알았고, 또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내가 마케팅 분야에서 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얼마만큼 노력했는지를 알고 있었다. 한해를 마무리하며, 각자가 수고했다고 위로하는 자리였고, 분명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그 날 밤 나는 이불 속에서 얼마나 이불을 걷어찼는지 모른다.
그러다 문득, 또 억울해졌다.
'왜, 난 그런 말 할 자격이 있지, 뭐.'
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럼 다시 울음을 참고 소리내어 말한다.
'난 그럴 자격이 있어, 진짜.'
살면서 두려웠던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두려움은 본능적인 감정이지만, 지나친 두려움은 내가 나를 믿지 못한 결과물이다.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았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어쩌면 사는 내내, 매순간 내가 나를 버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의미하고 거짓 된 자기긍정의 말들로 나를 위로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자기세뇌가 아닌, 진짜 내 마음에서 우러난 진심으로 내가 나를 칭찬하는 날이 많아지길 희망한다.
극도의 두려움은 결국 내가 나를 믿지 못해 끝내 나를 버리고 만 결과물이다.
극도의 불안은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 한 결과물이다.
모두가 나를 믿지 못 해 떠나버린다 할지라도, 끝끝내 나만이 내 곁에 남아 나를 믿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