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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서영이에게 있었던 일

2024년 연말정산

by 최서영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남긴다. 읽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나를 사랑하는 몇몇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읽어 내려갈 이 글은, 최서영 작가가 2025년 세상에 내보내는 첫 원고다. 미리 경고하지만, 글에 두서도 없고 교훈도 없다. 그러나 브런치에 올리지 않았던 내 지난 시간들을 함축적으로 담아보려 한다.

이게 뭐냐고 다들 물어보는데 2024를 표현했다



2024년은 내게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렇게 나를 지긋지긋하게 따라오던 산후우울증도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히 완치되었고, 2024년은 많은 도전을 했던 한 해였다. 예상치 못한 결과물들도 많았다.


2024년 처음 해본 일들

평생 찍을 일 없을 것 같았던 바디프로필 촬영

어색함과 부끄러움을 무릅쓴 릴스 제작

처음 경험한 혼자 하는 여행

처음 써 본 감사 일기


내 인생에서 이렇게 운동에 관심을 가진 한 해가 있었을까. 폴댄스를 시작으로 태권도, 플라잉요가, 스피닝, 댄스, 승마, 주짓수까지 다양한 운동을 체험했다. 단순히 다이어트 목적이 아니라, 운동이 주는 기쁨과 성취감을 온전히 즐겼다.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주짓수 수업에서 덩치 큰 사내와 엎치락뒤치락했던 경험이었다. 물론 상대는 나에게 맞춰주느라 수강권 하나를 허공에 날렸겠지만.

혼자가 아닌 혼자 여행

제주도 가파도로 떠난 글쓰기 스승님을 혼자 만나러 갔다. 처음에는 혼자 떠나는 것이 두려웠지만, 막상 경험해 보니 마치 조퇴하고 다이소나 올리브영에 들르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혼자 떠나기는 했지만, 스승님을 추종하는 많은 제자들과 모의하여 철저한 계획 하에 가파도에서 만난 것이니 사실상 혼자가 아닌 혼자 여행인 것인데 다음에는 진짜 혼자 떠나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번 여행으로 여행에 있어 즉흥적인 경험의 가치가 더 크다는 걸 알게 되었다. 2024년 내가 경험한 것들을 보아도 여행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글쓰기와 감사 일기

브런치에는 올리지 않았지만, 한 해 동안 글을 정말 많이 썼다. 에세이, 시, 그리고 손으로 직접 쓰는 감사 일기까지. 특히 감사 일기는 기억력 감퇴(?!)를 보완하기 위해 시작했는데, 불과 한 달 전에 쓴 글을 읽으며 깜짝 놀라는 일이 많았다. 손으로 글을 쓰니 같은 하루도 다르게 느껴지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친구의 죽음

2024년 11월 3일, 사랑하는 친구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 후, 남아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과 다시 시간을 보내기로 많은 약속들을 했다. 다 지키지는 못 하더라도 2025년은 최선을 다해 그 약속을 이행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12월에는 부산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무작정 떠나기도 했다. 그렇게 마음을 다해 사랑을 표현하다 보니, 새 친구를 사귄 것은 아니지만 내 주변의 친구들이 모두 새 친구가 되어있었다.


오래 알고 지냈다고 해도, 그것은 진짜 앎이 아닐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랑을 주는 일에 온 마음을 쏟았는데,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큰 사랑이 되돌아왔다. 지금껏 가장 친한 친구라 여겼던 사람들의 삶을 나는..잘 돌보기는커녕,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못했음을 깨달았다. 그들과 오래 알고 지냈지만, 정작 그들의 현실과 감정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마흔을 앞둔 지금에서야, 나는 내가 아는 것이 적고 참으로 부족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나이 먹기 전에 깨달아서 다행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구가 없다고 한탄했는데, 없는 건 친구가 아니라 친구이기를 작정하는 내 마음의 문제였음을 고백한다. 친구이기를 작정한 후로 힘든 순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다. 새로운 친구를 사귄 것은 아니지만, 기존의 친구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고, 완전히 다른 세계로 나를 초대해 주었다.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매일 하나님께 물었다.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무가치한가요? 친구를 살릴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결국 깨달은 것은 단 하나, 인간이 인간으로 태어나 죽기까지 자신의 삶을 삶 되게 하는 것은 사랑이요, 죽기까지 해야 할 일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죽은자를 위한 기도가 쓸모 있나요? 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


자녀의 종교, '자율의지' vs '교육'

아이들을 교회에 데려가면서 자연스럽게 종교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남편은 기독교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배는 드리지 않지만 함께 교회를 드나들었다. 아이들은 매주 교회 가는 것을 기다렸다. 크리스천 입장에서는 매우 고마운 일이다. 아이는 교회 가고 싶다고 아침마다 내 귓가에 속삭였다. 그러나 그것이 감사하면서도 두렵기도 했다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었을 거다.


이 양가감정은 이번 명절에 친정에서 종교에 대한 토론을 하게 되면서, 더 깊어졌다.

우리 집은 엄마만 기독교인이었고, 아빠와 동생은 무교였다. 엄마는 어릴 때 나와 동생을 교회에 데려갔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는 강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생은 어린 시절 교회를 다닌 것이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교회를 억지로 다니며 종교 자체에 거부감을 느꼈던 동생과 달리, 나는 성가대와 찬양단 활동을 하며 좋은 기억이 많았다. 그것이 다시 교회로 다니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었음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동생과 대화하면서, 종교가 누군가에게는 긍정적인 경험이 될 수도 있지만, 강요되었을 때는 오히려 깊은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신앙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할 기회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신앙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그리고 신앙이 강요가 아닌 교육이 되려면 어떤 방법이 가장 적절할지에 대해 자문하게 되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어떤 종교를 가지게 되던 스스로의 신앙이 되길 소망한다. 설령 다른 종교를 가지게 되어도 그것이 스스로 세운 신앙이었으면 좋겠다.


교회를 다시 나가면서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다녔지만, 성경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창세기부터 다시 공부하며, 유튜브의 다양한 강의를 통해 신앙과 역사, 철학을 연결 짓고 있다. 너진똑도 재미있고, 최근에는 현승원 tv에 빠져있다. 성경은 단순한 종교 서적이 아니라, 유대교, 천주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와 세계사를 아우르는 인문학 서적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같은 맥락에서 불교도 그 근원을 공부하다 보면 노장사상, 유가 등 다양한 철학과 인문학을 배울 수 있다.

막간을 이용한 우리 스승님 책 홍보 ㅎㅎ


2024년은 변화와 성장이 공존했던 해였다.


운동을 통해 내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을 알았고,

여행을 통해 계획 없이 떠나는 자유를 배웠다.

감사 일기를 통해 순간을 기록하는 소중함을 깨달았고,

사랑하는 친구를 떠나보내며 인간관계의 본질을 다시금 고민했다.

신앙을 돌아보며 가족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앞으로도 사랑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근황에세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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