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동생
아리의 인형방 _ 동생
MBTI INFJ 유형. 머릿속에 생각과 고민이 많은 타입이라 하는데 대체로 쓸데없는 생각이 많다.
그 생각 중 하나가, '나는 왜 인형을 모으는가?'이다.
회사에 입사한 지 8년 차. 돈을 모으기 시작한 무렵부터 인형을 모았다. 처음에는 현 남편, 당시 남자친구가 취업 격려 차 사준 인형들이었고 돈이 모이고부터는 침대에 함께 누울 인형들을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다. 해외여행이라곤 대학생 시절 떠난 해외 봉사뿐이었던 내가 내 돈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그 지역의 유명 캐릭터나 평소 좋아했던 캐릭터 인형들을 보이는 족족 사 모았다.
그렇게 나의 싱글침대는 내 몸 뉠 곳 없이 가득 채워져 갔다. 아끼는 인형들은 머리맡에 두고, 크고 퐁신한 인형들은 발밑에 두었다. 일어나면 바닥에 우수수 인형이 떨어져 있고, 더러워진 아이들을 빨고 나면 솜이 뭉치기 일쑤였지만, 적막한 내 방에 무언가가 채워지는 것이 기분 좋았다.
주변에 내 인형방 사진을 보여주면 다들 놀라고, 나는 놀라는 주변인들을 보고 놀란다. 그 때 '나는 왜 인형을 모으는가'에 대해 생각해보았는데, 결론은 '어린 시절, 선생님이었던 엄마가 인형과 장난감을 그다지 사주지 않아서 내 마음속 결핍이 있었나보다'로 마무리 지었다. 어찌 보면 엄마·아빠의 잔소리를 차단하기 위한 합리적 결말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내가 일하면서 번 돈을 인형으로 치환하면서, 내 노력의 결과물을 가시적으로 눈으로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보기만 해도 뿌듯한 내 새끼들.
나의 인형 수집을 가장 가까이서 본 언니에게 이런 내 생각을 말한 결과, ‘그냥 귀여워서’라는 지적을 받았다. 결국 귀여운 게 최고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조크든요. 안아보면 기분이 한결 더 조크든요.
어떤 이유에서든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인형을 모았고, 큰 난관에 봉착했다. 인형을 더 둘 곳이 없어진 것이다.
때 마침, 결혼하고 방 세 개의 신혼집을 차리면서 방 하나를 자연스럽게 인형방으로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현 남편, 당시 남자친구를 핑계로 산 인형들도 있었기에 시어머니에게도 '여기 지분 1/3은 남편이에요'라고 당당히 말했다. 그렇게 꾸며진 나의 '인형방'. 큰 쿠션을 두어 가만히 앉아 인형을 감상할 수도 있고, 남편이 좋아하는 스피커를 두어 음악 감상하며 책 읽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그렇게 인형만을 위한 온전한 방이 마련되니 이 방을 가득 채우고 싶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열망이 들었다. 인형을 고르는 기준도 자연히 생겼다. 이제는 인형의 부피를 고려하여야 하고, 정말 마음 가는 아이로 엄선해서 구매한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피규어’로 범위를 확장됐다.
피규어는 다소 높은 가격이지만 부피가 작고 전시했을 때도 보기 좋다. 팔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혹시 모를 사태에선 돈벌이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크고 작은 피규어까지 수집 범위에 들어오면서, 내 여행은 항상 ‘쇼핑’의 시간이었다.
오늘의 코스는 이 가게와 저 가게를 꼭 가는 것. 그리고 여행 돌아오면 아무리 피곤해도 캐리어부터 풀고 나의 전리품을 정리하고 자야 내 마음이 놓인다. 바닥 가득 물건을 펼쳐두면, 여행이 끝났어도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두근거린다.
물건을 모으는 행위는 쉽게 그 이유를 잃어버리게 될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자주 나에게 '왜 인형을 모으는지' 되묻는다. 혹시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모으는 건지, 모으다 보니 버릇이 되어서 원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는데 사는 건 아닌지. 그럴 때마다 인형방에서 눈을 또랑또랑 뜨고 있는 인형들과 눈 맞춤을 해본다. 그 어떤 인형도 내 맘에 들지 않는데 억지로 들인 아이가 없고, 인형방을 둘러보아도 버릴 아이가 하나 없다. 하나하나 소중한 나의 추억이고 기억이고,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한 나의 표현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