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형의 안김성

_ 동생

by 최서영

내 인형의 안김성 _ 동생


내 인형 수집에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안김성'. 안김성이란, '인형을 품에 안았을 때 얼마나 나에게 만족감을 주느냐?'는 뜻의 내가 만든 말인데, 가끔 남편 옷을 고를 때도 사용된다. (예시 - 이 옷을 입은 남편을 안았을 때 느낌이 어떠한가)


대체로 가슴 안에 꽉 차는 큰 인형을 선호하는데, 무조건 크고 무조건 폭신하다고 좋은 게 아니다. 내 손에 착 감기는 그 느낌, 안았을 때 오는 만족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사실 가게 안에서 잠시만 안고 돌아다니면 금방 정이 들어 사버리게 되는 인형이 있는데, 사람과 사람 관계처럼 인형과 나 사이에도 '서로를 받아들이는 순간'이 항상 있어왔다.


잠시 대화를 나눠보면 나와 같은 과인지, 나랑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인지 판단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내 성격은 지극히 단순해서, 한 번 '내 사람이다' 판단되면 모든 걸 내어주고 보여준다. 상대를 받아들이는 순간이 굉장히 빠르다.


인간관계에선 믿었던 상대방이 내가 용납할 수 없는 선을 넘었을 땐 그 순간 문을 닫아버릴 때도 있다. 반면 인형은 선을 넘을 일이 없으므로, 애초에 내 인생에 없던 인형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내 인형방엔 사실상 출구가 없다. 들어올 땐 쉬웠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안김성’은 비단 ‘폭신함’으로 치환되는 단어는 아니다. 치환이 되는 단어였다면 애초에 ‘안김성’이라는 말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인형이 가진 털 재질, 팔다리의 모양과 길이, 이 캐릭터가 가진 스토리 등 모든 것이 종합되어야 한다.


최종적으로, 내가 인형을 안고, 인형이 나를 안는, 상호교환의 온전한 느낌이 들어야 한다. 인형방에 들인 뒤 매일 같이 안고 노는 건 아니지만,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던 그 인형이 이 공간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안지 않아도 나는 인형의 '안김성'을 느낀다. 처음 안았을 때 그 따뜻한 감성을 떠올리면서.


사람 간에도 ‘안김성’은 유효하다.


무수히 스쳐 지나간 인연들이, 꾸준히 이어질 수 있는 것은 '함께 무언가를 했던 기억' 하나로도 충분하다. 함께 큰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고난을 겪은 사이도 있고, 아주 사소하게 어떤 장소에 함께 갔다가 좋았던 기억을 가진 사이도 있다.


이 ‘안김성’을 나눈 친구는 언제 보아도, 바라만 보아도 매일 보아온 사이처럼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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