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언니
※ 본 에세이는 언니와 동생, 시인 엄마, 극작가 아빠 4인의 릴레이 에세이입니다.
대학을 다니며 생전 처음으로 먹어보는 음식들이 많았다. 그 중 하나가 감자탕이었다. 돌이켜보면, 부모님이 나에게 감자탕을 먹일 일이 있었을까 싶다. 순댓국도 그렇고, 대학 선배가 데리고 가서 사준 회전초밥도 기억이 난다.
나의 학창시절은 '편식의 시절'이었다. 내 인생 최초의 편식에 대한 기억은 '야쿠르트'다. 중앙시장 달동네에 살았었는데, 언덕 아래 우유배달 점이 있었다. 그 집에서 매일 할머니가 내가 마실 야쿠르트를 사 오셨다. 다섯 묶음이 한 줄인데 나는 한 줄 비닐 포장을 뜯지 않고 하모니카처럼 빨대를 꽂아 마셨다. 그리고 빅파이.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구멍가게에 날 데려가 먹고 싶은 걸 다 고르라고 하셨다. 나는 정말 먹고 싶은 걸 다 골랐다.
특이하게 게맛살도 좋아했다. 할머니가 시장에서 장을 보고 오면 오양맛살을 꺼내 스틱 치즈 먹듯이 항상 쥐고 있었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은 정말 원 없이 먹었다. 야쿠르트를 좋아했던 나는 사발 그릇에 야쿠르트를 담아 두 손으로 그릇을 들고 마실 수 있는 만큼 한 번에 마셨다. 어느 날은 마당에 내가 마시던 야쿠르트 사발 그릇이 있길래 마셨는데, 그게 내 인생 첫술이 되었다. 마당에 막걸리에 취해 대자로 누워있는 나를 상상해보면 웃음이 나온다. 그 막걸리는 화장실 공사를 하러 오신 기사분들이 마실 막걸리였다고 한다.
우리 집 부엌의 주인은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우리가 잘 먹는 음식이 있으면 그 음식에 학을 뗄 때까지 그것만 차려주는 분이셨다. 한번은 다진 소고기에 다진 애호박과 당근, 큰고모가 만든 양념 고추장 등을 넣어 비빔밥을 해주었는데, 우리가 잘 먹었다고 한다. 몇 개월을 비빔밥만 해주셨다. 다른 날은 마트에서 참치통조림을 사다 줬는데 그것만 잘 먹어서 밥을 안 먹겠다는 나에게 밥, 갓 딴 참치통조림 두 개만 달랑 차려주셨다. 너무 먹기 싫어서 고등학생인데도 밥상 앞에서 울었다.
학창시절에 나는 삼겹살을 좋아했다. 소울푸드하면 냉동 삼겹살이 떠오른다. 어떤 날은 마트에서 냉동 삼겹살과 상추를 사서 학교 체육관 앞에 돗자리를 깔고 집에서 가져온 버너를 켰다. 아무도 없는 주말 운동장에서 친구와 나는 독서실에 안 가고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집에서 가져온 방울토마토를 한입 베어 물었는데 토마토즙이 친구 얼굴에 튀었고, 나는 그게 너무 웃겨서 입안에 있던 쌈을 뱉어낼 정도로 크게 웃었다. 내게 냉동 삼겹살은 ‘자유의 맛’이었다.
할머니는 동생과 내게 부엌에 있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다. 할머니가 싱크대에 물을 틀어놓고 보고만 있을 때가 많았다. 할머니는 어째서 물 아깝게 설거지도 안 하고 한숨만 쉬실까. 내가 설거지를 하려고 하면 할머니는 하지 말라고 화를 냈다. 나중에 커서 지겹게 한다고.
아기 엄마가 된 지금도 나는 설거지를 못 한다.
달고나를 만들다 국자를 태워 먹는 날이 많아서 할머니가 참 싫어했다. 할머니는 늘 부엌에 있는 나를 좋아하지 않으셨다. 처음으로 한 요리는 아마도 라면이고, 처음으로 혼자 볶음밥을 해봤는데 너무 맛이 없어서 다 버렸던 기억이 있다. 볶음밥은 많이 해보면 해볼수록 늘었다.
야밤에 아빠가 끓여준 짜파게티가 맛있었다. 아빠의 통통한 손으로 쪽쪽 찢어준 김치는 볶은 김치맛이 났다. 하루는 밤에 고기가 너무 먹고 싶었는데 아빠가 당근을 썰어 프라이팬에 구워줬는데, 눈을 감고 먹으면 정말 고기 맛이 났다. "아빠, 고기 맛이 나." 볶은 당근은 아빠의 좋은 술안주가 되었다.
회사에서 정신 없이 일하다가 시계를 보면 어느덧 점심을 먹을 때가 되어있을 때가 많다.
서로 뭐 먹지? 도돌이표가 되곤 한다. 먹는 것도 거기서 거기다. 최대한 가까운 곳을 고르기도 하고, 최근에 갔던 곳들만 떠오른다. 남편은 연애할 때부터 오늘 뭐 먹을지 잘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루는 남편에게 평일 점심 메뉴 고르는 기준이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남편은 “출퇴근할 때 새로 생긴 곳이라던가, 눈여겨본 식당들을 먼저 제안하기도 하고, 오늘의 날씨, 오늘 저녁 메뉴까지 고려해서 안 겹치게끔 메뉴를 고른다”고 답했다.
남편은 소위 '먹잘 알'이었다. 먹을 줄 아는 사람.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어떤 사람과 먹느냐에 따라 음식 맛이 달라지기도 한다. 남편은 먹으면서도 잘 음미하고, 맛있으면 맛있다고 칭찬한다. 식당에서 나올 때도 정말 맛있게 먹었으면 꼭 잘 먹었습니다! 문을 나설 때 한마디씩 하고 나온다. 그래서 데이트를 할 때도, 남편이 잘 먹었다고 말하며 나올 때 나도 '아, 맛있었구나' 한다. 남편을 만난 이후로는 맛있다고 곧잘 말하는 사람이 좋아졌다. 먹잘 알이 인생도 잘 산다! 나만의 좋은 사람구별법이다.
감정에도 맛이 있다면? 축복의 맛은 절밥이다. 평상시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나물들이, 그릇 한가득 담겨 선물처럼 준비되어있다. 별 뜻 없이 아삭하고 베어 물었는데, 상추가 이리 달았던가. 혀끝이 알싸해지며 배가 웅-하고 운다. 더 달라고.
분노의 맛은 짜고 맵다. 그냥 그런 맛이 당기고, 짜고 매운 음식들을 찾으면 찾을수록 축복의 맛과 멀어진다.
슬픔은 뭘 먹을지 모르겠다는 날 먹는 간편 도시락 맛이다. 배고픔마저 무뎌지고, 허기만 채우자는 마음이다. 슬픔의 온도는 차갑다.
'아, 살을 빼야 하는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지금 내가 배가 고픈 것인지, 목마른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폭식도 마찬가지다. 나의 감각이 망가진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