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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기다림

사순절 Think 프로젝트 묵상에세이《그러므로 생각하라》

by 최서영

폴댄스를 배운 지 벌써 120회차다. 초급반이라지만 기술도 제법 익혔고, 본 것도 많다. 아는 게 많아지면 교만해진다. 조금 할 줄 안다고 착각한다. 그런데 올라가 보니 손이 미끄러지고, 팔이 버티지 못한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선생님이 말한다.


“서영님, 지금 다시 올라간다고 해도 실패할 거예요. 귀를 열어야 해요. 지금 제 말을 듣지 않잖아요.”


연습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열심히 하면 될 거라고 믿는 건 착각이다. 설령 어쩌다 콤보를 성공하더라도 우연히 해낸 것일 뿐 실력이 될 수 없다. 듣지 않으면서 안 된다고만 한다. 고치려는 노력이 없는 노력은 헛된 것이다.


기도도 그렇다. 귀를 열어야 한다. 기도는 내 뜻을 하나님께 설득시키는 게 아니다. 기도는 내 마음을 바꾸는 과정이다. 하나님이 내 기준을 바꾸는 과정이다. 마음이 단단해져서 손을 뿌리치는 심령이었지만, 결국 기도를 통해 내 심령이 감화되는 과정인 것이다.


그날 아침, 마태복음 13장에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묵상 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씨앗이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비유로 설명한다. 씨 뿌리는 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를 상징적으로 비유한 것이고, 씨앗이 떨어진 땅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듯, 우리의 마음 상태에 따라 결실도 다르게 맺힌다는 이야기다.



1 그 날에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니,
2 큰 무리가 갈릴리 바닷가에 모여들므로, 예수께서 배에 올라 앉으시고, 무리는 모두 해변에 서 있더니,
3 비유로 많이 말씀하시되,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러 나가서
4 뿌릴 때에,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여 곧 나왔다가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 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그것을 눌러버렸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마태복음 13장 1절~9절 말씀


길가 같은 마음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새들의 먹이가 되어,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하나님의 뜻을 듣지 못하고 결실을 맺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는 오늘도 '기독교 교육'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닫고 있다. 살면서 그런 경우들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눈에 보이는 현실만을 보며, 신의 뜻을 놓쳐버린, 여러 장면 장면들. 심지어 인지하지 못 했던 장면들까지 더 한다면 내 삶의 대부분은 길가에 떨어진 씨앗 같았다.


예수님은 그런 나를 향해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한다. 선생님 말도 안 듣고 내 마음대로 폴을 타는 오늘 내 모습 같기도 했다. 그래, 나는 귀 열고 듣고 고치면 된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귀를 열면 좋은 땅이 된다.


돌밭 같은 마음
돌밭에 떨어진 씨앗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쉽게 흔들린다. 처음에는 열정적으로 믿음을 선택하지만,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금세 포기하는 장면들이 떠올랐다. 미래에 대한 불안,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칠 때, 나의 얕은 믿음을 매번 확인하고야 만다. 믿음은 단순히 가지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면할 때 그 믿음을 지키는 과정 자체가 어려운 일임을 실감한다. 이영표 씨는 믿음을 '엘리베이터를 거꾸로 타는 것'에 비유한다. 믿음이란 역동을 요한다. 내가 선택한 길이 올바른 길인지 알 수 없지만,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만 한다. 믿음은 언제나 나아가야만 한다.


가시덤불 같은 마음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씨앗은 불안에 휘둘린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이 그 성장을 방해한다. 이 모습이 바로 내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교육, 돈의 문제, 미래에 대한 걱정이 나의 신앙 뿐 아니라 삶의 많은 부분을 흔든다. '돈이 부족하면 어떻게 하지?', '아이들이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하면 어떡하지?' '직장에서 버림 받으면 어쩌지?' 이런 불안한 마음들이 삶의 대부분을 쓸데 없이 가로막고 있었다. 가시덤불이 자라 씨앗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처럼, 사라졌다 생각해도 어느새 피어나는 곰팡이처럼 두려움과 걱정들이 믿음을 흔들고 있었다. 이 가시덤불을 제거하지 않으면, 뿌리 내릴 수 없다고, 뿌리 내리지 않으면 흔들릴 수 밖에 없다고 오늘 말씀은 말한다.


좋은 밭이 되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땅은 바로 좋은 밭이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매번 '이렇게 해라' 혹은 '저렇게 해라'라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나에게 선택할 자유를 주신다. 중요한 건 내가 그 선택 속에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믿음으로 내린 선택을 통해 그 길을 열어주시고, 그 길을 통해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도했다. "하나님, 제 마음을 기경해 주세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우리 가정이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떤 선택을 하든, 귀를 열 때 좋은 밭이 되어 어떤 선택을 하든 하나님께서 열매 맺게 해주시기를 믿습니다." 내가 믿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밭을 고치시고, 그 속에서 결실을 맺게 하실 것이다. 믿음의 과정이, 불안의 무게가 아니라 신뢰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실 것을 믿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계산기를 두드리며 고민할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불쑥 길가에 가 있다. 돌밭에 가 있다. 가시덤불에 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꾸역 꾸역 거슬러 올라간다.


* 본 글은 한소망교회 사순절 Think 프로젝트 《그러므로 생각하라》 묵상집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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