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늘의 만나

사순절 Think 프로젝트 묵상에세이《그러므로 생각하라》

by 최서영

나는 식물을 잘 죽이는 편이다. 다육이든, 스투키든, 아무리 생명력이 강하다고 알려진 식물도 우리 집에만 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어버린다. 반면, 우리 엄마는 식물을 정말 잘 키운다. 어린이집에서 식목일에 받은 작은 화분을 엄마에게 맡겼더니 1년 뒤, 어느새 그 화분은 나무가 되어 있었다. 시부모님이 재작년에 선물로 주신 난은 어느새 두번 째 꽃을 피웠다. 작년에 핀 꽃보다 훨씬 크고 튼튼한 꽃대였다. 놀란 나는 엄마에게 어떻게 그렇게 식물을 잘 키우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말했다.


"첫째, 바람이 잘 통해야 해.

둘째, 너무 외면하지도, 너무 집착하지도 말고 딱 죽지 않을 만큼만 물을 줘야 해."

KakaoTalk_20250310_075918767.jpg
KakaoTalk_20250310_075918767_01.jpg
KakaoTalk_20250310_075918767_02.jpg


엄마의 말을 들으며 깨달았다. 식물은 위기를 맞을 때 성장한다는 사실을. 이는 우리의 삶과 닮아 있었다. 성장은 언제나 일정한 속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치 계단식으로 이루어지듯, 고비와 위기를 넘을 때마다 우리는 한 단계씩 성장한다. 그리고 나는 이 모습이 하나님의 성장관을 닮아 있다고 느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온 세상의 부자들을 뛰어넘는 권능과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을. 하지만 정작 현실 앞에서는 불안을 느낀다. 결국 그것은 내 믿음이 얕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요즘 기독교는 기복 신앙을 경계하면서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때로 솔직하지 못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하나님, 저 돈 필요해요. 돈 주세요."라는 기도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권능을 주세요"라는 기도보다 더 솔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올바른 기도일까? 그렇게 기도하는 순간, 나는 내 안의 위선을 마주하게 된다.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권능을 주셨다. 악한 영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는 능력을. 하지만 그 길은 간소했다.


"배낭도, 전대의 돈도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단지 지팡이 하나만 들고 가라."


마가복음 6장 7절부터 13절의 말씀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이 의지할 것은 하나님뿐이라는 것을 강조하셨다.


7 "그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두 사람씩 짝지어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주셨다.
8 또 그들에게 명하시기를, '여행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고
오직 지팡이 하나만 가져가라. 떡도, 가죽 자켓도, 돈도 가지지 말고,
9 오직 신발만 신고, 두 벌 옷을 입지 말라.' 하시며
10 '어떤 곳에 들어가면, 거기서 떠날 때까지 거기서 지내며,
11 어떤 곳에서 너희를 영접하지 않거나 말을 듣지 않거든,
거기서 나와 발에 먼지를 털어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하시고,
12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고 사람들에게 전파하며,
13 많은 귀신을 쫓아내고 기름을 부어 병자들을 고치기도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는 다양한 반응이 따를 것이다. 받아들이는 이도 있을 것이고, 거부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와 상관없이 계속 가야 한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머물 곳이 허락되면 그곳에서 머물고, 거절 당하면 발의 먼지를 털고 떠나는 것. 그것이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이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특히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며"라는 구절이 오래 머물렀다. 출애굽 당시, 광야에서 만나를 거두었던 이스라엘 백성이 떠올랐다. 하나님은 날마다 만나를 주셨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내일을 대비해 만나를 남겨 두었고, 그 만나에는 벌레가 생겨 썩고 말았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오늘'의 만나였다.


이것은 단순한 욕심이나 불안의 문제가 아니다. 신뢰의 문제다. 제자들이 배낭도 돈도 없이 길을 떠나야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일을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 하지만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일까? 나는 요즘 '불안'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떠올린다. 두 아이의 교육비, 전세 계약이 끝난 후의 거처, 내가 앞으로 서 있어야 할 자리.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 나는 여전히 불안하지만, 그 불안을 내려놓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묻는다. "하나님, 이 불안을 내려놓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인가요?"


그때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신다. "배낭도, 전대의 돈도 아무것도 가지지 말며." 이 말씀은 무조건 가난하게 살라는 의미가 아니다. 모든 준비를 끝내야만 안심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하나님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고난만을 주신다는 건, 그 고난을 통하여 나의 성장을 기다리신다는 의미이다. 제자들은 그렇게 길을 떠났다. 필요한 것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채로, 주어진 하루를 하나님께 의지하며 걸었다.


그렇다면, 오늘 내게 주어진 '만나'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지금 내 앞에 놓인 작은 은혜일지도 모른다. 따뜻한 햇살, 사랑하는 가족,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건강,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내일을 걱정하며, 내일의 만나를 미리 쌓아두려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내일의 만나를 미리 저장하려 하면, 그것은 결국 썩고 벌레가 생길 것이라고. 오늘을 충분히 살아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오늘의 만나'다.


길을 걷다 문득 본 현수막이 떠오른다. '일일 호프'라는 글씨. 누군가 농담처럼 말했다. "하루짜리 희망이야?" 하지만 하나님은 오늘 내게 말씀하셨다. 하루짜리 희망은 하루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루씩, 영원히 주시는 희망이다.


나는 기도한다.


"하나님, 내일을 움켜쥐려는 두려움 대신, 오늘 주시는 은혜에 머물게 해주세요. 제자들이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길을 나섰듯, 저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걸어가게 해주세요. 불안이 찾아올 때마다, 만나를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게 해주세요. 오늘도, 내일도,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 오늘을 살아가겠습니다. 그리고 내일도,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를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멘."


* 본 글은 한소망교회 사순절 Think 프로젝트 《그러므로 생각하라》 묵상집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조용히 잡은 옷자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