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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서 시작된 것

사순절 Think 프로젝트 묵상에세이《그러므로 생각하라》

by 최서영

예수께서 요단강에 오셨다. 세례 요한 앞에 섰다. 요한은 망설였다. 자신이 예수께 세례를 베풀 수 없다고 했다. 자격이 없다고 했다. 오히려 자신이 예수께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한을 설득했다. “이와 같이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요한은 결국 순종했다. 물이 찰랑였다. 예수께서 물속으로 내려가셨다. 그리고 다시 올라오셨다. 그 순간 하늘이 열렸다.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같이 내려왔다.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세례는 회개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죄 없는 예수님이 이 세례를 받으셨다. 왜였을까.


나는 자꾸 요한의 망설임에 시선이 갔다. 요한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앞에 두고 주저했다. 그럴 만했다. 거룩 앞에서 인간은 작아진다. 성경의 인물들에게서 자주 목격되는 주저함이다. 나는 이 주저함이 성경을 더 성경되게 한다고 느끼는 것 같다. 거룩함 앞에서 제대로 서 있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요한도 물었다. "제가 감히?" 그러나 예수께서는 멈추지 않으셨다. 요한의 머뭇거림을 밀어내고 물속으로 내려가셨다. 요한의 모습에서 내 모습, 우리의 모습을 본다.


놀랍게도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 그 첫걸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물속에서. 낮은 자리에서. 사람들 속에서.


믿음을 시작한 사람들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 주저한다. 심지어는 그 믿음이 자신의 지혜로부터 온 것이 아님을 스스로도 인지하고는 자꾸만 머리로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게 8년 만에 다시 교회에 발을 들이게 된, 회심한 내 모습, 불과 몇 달동안의 내 모습이었다. 나는 내가 망설였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자격이 없다고, 부족하다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했던 순간들. 하나님은 거기서 뭐라고 하셨을까.


성경은 예수님은 내게 이와 같이 말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합당하니라.”

그러니 가라고, 하라고, 시작하라고 말하고 있다.


재의 수요일이다.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는 날이다. 인간의 유한함을, 연약함을,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은혜를 기억하는 날. 오늘 나는 다시 처음을 떠올린다. 예수님이 물속에서 시작하셨듯이, 나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묵상을 시작한다. 그러므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기도한다. "하나님, 오늘도 망설이는 저를 이끌어주세요. 합당한 길을 걷게 해주세요. 낮아지는 자리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해주세요. 아멘."


* 본 글은 한소망교회 사순절 Think 프로젝트 《그러므로 생각하라》 묵상집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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