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수 있을까? 버려야 한다는 생각 마저도

인문학자 김경윤의 <2025년 귀가쫑긋 고전공부반> 고전의 핵심

by 최서영

깨닫고, 버리고, 또 깨닫고, 다시 버리고. 불교가 말하는 지혜가 그렇다. 반야심경은 ‘공(空)’을 말한다. 공은 흔히 텅 빈, 없다의 의미로 받아들이는데, 그보다는 영원한 건 없다는 것, 계속해서 변한다는 것 그래서 붙잡아둘 수 없다는 것, 붙잡아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부처는 35세에 깨달았고, 80세에 죽었다. 그 사이부처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깨달음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인간의 몸으로 살아야 했다. 삶은 변했고, 고난은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집착하지 않았다. 그는 신을 무시하고, 신분을 무시하고, 종교마저도 뛰어넘었다. 깨닫지 말아야 할 자가 깨달았다고 해서 탄생한 종교, 그것이 불교다. 모든 경계를 허물고, 모든 틀을 버리는 것에서 시작된 길.


버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저 손에서 놓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집착을 끊어내는 것. “이것이 나다”라고 움켜쥐던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반야심경은 말한다. 색(色), 즉 오감으로 느끼는 모든 것조차 공하다고. 우리가 몸으로 경험하는 것,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 느끼는 감정까지도 실체가 없다고. 공은 그저 ‘없음’이 아니다. 그것은 ‘변화’다. 우리는 끝없이 변하고, 그 변화마저도 영원하지 않다.


사도 바울도 비슷한 말을 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린도전서 13:11)


동서양을 막론하고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내려놓는 과정이 필요하구나, 반야심경 강의를 들으며 느꼈다. 과거의 사고방식, 감정, 신념들. 나를 이루던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고 나아가는 일.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다고 느낀다. 어떤 감정은 나를 놓아주지 않고, 어떤 기억은 희미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괴로운 것이다. 그래서 자꾸만 움켜쥐게 된다.


솔로몬도 말한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솔로몬은 이 세상의 부와 지혜, 쾌락과 성취를 모두 누려본 사람이었지만, 결국 그것들이 다 덧없음을 깨닫고 이렇게 고백한다. 전도서는 인간이 쌓아 올린 모든 것이 결국 사라질 것을 이야기하면서, 진정한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불교의 ‘공(空)’과도 연결할 수 있을 것 같다. 버리는 과정 속에서 느끼는 헛됨, 인간이 붙잡고 있는 것들의 무상함 같은 것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허망함이다. 그 허망함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서양철학은 존재(유무)를 탐구하지만, 동양철학은 공을 본다. 기독교는 “나를 버리고 예수를 따르라”라고 말하고, 불교는 “그 버림마저도 버려야 한다”라고 말한다.


나는 앞으로 아홉 번 더 강의를 듣는다. 더 많은 지식을 쌓고, 더 깊이 배운다. 하지만 결국은 그 배움조차도 버려야 한다.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버릴 수 있을까.

* 본 글은 <2025년 귀가 쫑긋 고전공부반> 고전의 핵심 - 친절한 인문학자 김경윤과 함께 읽는 고전강좌 1강 반야심경을 듣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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